이 기사는 제천 의림포럼 교육위원장으로 있는 임창순 기자가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 <개명산전망대>의 의림포럼 윤성종 사무처장 인터뷰 내용을 옮겨 실은 글입니다...편집자 주
"을미의병의 진원지 제천을 문화재 반환운동의 진원지로…"
-제천의병 정신 계승을 위한 일본 약탈 문화재 반환운동 시민선언
이 운동의 주체는 의림포럼이라하는 시민단체이다. 이 단체가 왜 이런 운동을 하려고 하는지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대변인인 윤성종 사무처장을 만나보았다. 이 내용은 지역의 라디오 방송에 잠시 소개되기도 했지만, 의병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널리 홍보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차제에 보다 국민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도록 독자들의 조언과 조력을 바란다.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있다면?
"제천에서는 해마다 을미의병을 기리기 위한 제천 의병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사내용이 원래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모든 시민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이거나 문화예술 축제의 성격이 분명해야 하는데, 이것 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의병제는 정체성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동안 의림포럼에서는 의병제의 정체성 문제에 심도있는 접근을 해 왔습니다. 의병정신을 현재에 되살리고, 모든 시민에게 자긍심과 의미를 부여하려는 취지와, 국민들에게 의병과 의병의 고장 제천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할 프로그램의 도입이었지요. 이것이 이 행사를 계획하게된 배경이라고 할 것입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제천 하면 의병의 진원지로서 그 정신이 살아있는 고장인데요, 현재 일본에서 약탈해간 문화재가 얼마나 됩니까?
"일본의 문화재수탈은 임진왜란부터 조선후기,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자행되어왔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약탈 문화재는 알려진 자료가 없어 추정만 할 뿐이지만, 일본내의 문화재 전시관을 돌아보면 12세기 이전의 문화유산이 많이 눈에 띄는데, 이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문화재 약탈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사실 이렇게 단정하는데는 매우 억지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식민지시대의 문화재 수탈과정을 보면 조금도 과장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식민지 문화정책의 기본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 약탈함으로써 민족의식과 투쟁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총독부 정무총감, 학무국장을 필두로 '조선보물고적 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가 만들어져 어용학자, 헌병, 경찰 등을 동원하여 전국의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를 하고, 고구려 시대의 유물 유적이 집중해있는 평양 대성산 일대를 먼저 파괴하고 약탈하였습니다.
대동강변 일대에서만 1400여기의 고구려 고분이 도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철도, 도로, 군사시설의 건설 등을 구실로, 각지의 유서 깊은 도읍이나 읍성, 산성 등을 수없이 파괴했습니다. 서울 경복궁을 중심지로 총독부 청사를 건설하며, 남벽이 파괴되고, 정문인 광화문을 동쪽으로 옮기며, 근정전, 사정전 등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만을 남기고 4천여 간에 달하는 건축물이 완전히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1910년 11월에는 헌병, 경찰을 동원하여 서울 종로 일대의 서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서점, 향교, 서원, 개인 서고를 습격하여 민족 서적들을 찾아내 불살랐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을지문덕전> <충의전> <위인전> 등 50여종의 역사서가 있었으며, 소각된 서적은 20만여 부에 달한다고 합니다.
총독 데라우치는 조선에서 약탈한 불상, 범종, 불구, 금관, 장신구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가 '조선관'을 개설하여 자기의 공을 과시하였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이 갈 것입니다.
관권으로 민간에 산재해있던 문화재도 약탈되었습니다. 1915년 이른바 시정5주년 공진회를 열어 이때 문화재의 출품자는 포상한다고 하여 경찰관까지 동원하여 각 가정에 있던 진귀한 문화재를 강제로 출품시킨 뒤, 공진회가 끝나자 '연구자료'로 이용한다는 구실로 이를 빼앗았는데, 그 수는 4만2020여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귀중한 서화, 미술 공예품 87종은 공진회를 보러 온 일본 황족들이 직접 가져갔고, 나머지는 총독을 비롯하여 고관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합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일본 현지 조사 결과,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한국 문화재는 약 3만4000여점. 이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반출된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정부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가 20개국에 걸쳐 7만4000여 점으로 추정하고 있더군요. 이외에도 민간학자들이 추정하는 20여 만점 및 미확인 추정치를 합하면 약 1백만 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약탈된 문화재를 돌려 받기 위한 어떤 운동이나 움직임이 없었나요?
"1958년 한일 정부간 회담을 통해 삼국시대 귀고리 등 100여점이, 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각종 도자기 등 1300여점의 문화재가 일본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이후 반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가 90년대 들어 조금씩 반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96년 경복궁 자선당 건물 유구가 돌아왔고 데라우치 총독이 약탈해간 데라우치문고를 일본의 야마구치여대가 경남대에 기증했습니다.
99년엔 개인 소장가가 고려 동종을, 2001년엔 역시 개인소장가가 문인석 65점을 한국에 기증했지요. 일본에 유출됐다 광복 이후 되돌아온 문화재는 3500여 점으로 이 중 정부간 협상에 의한 것은 1600여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차원의 반환이었습니다. 특히 90년대 이후의 문화재 반환은 거의 대부분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한일협정 당시 1300점만 돌려받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어서 타임지 보도처럼 정부간 협상을 다시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 보입니다. 일본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최근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빼앗긴 외규장각도서 반환문제가 정부차원에서 추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발표문과는 달리 프랑스 국내법의 제약을 받아 반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궁여지책으로 영구임대라는 묘책 비슷한 것을 내 놓았지만, 우리 것을 우리가 영구임대 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모양이죠.
아무튼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수에 그치고 있으며, 실제 반환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요?
"환수 대상 문화재가 약탈된 것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화재 반환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반환운동이 없었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의 대표성을 상징하는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 당시 사실상 문화재 반환 노력을 포기한 채 협상을 마무리지었고, 더 이상의 반환에 대한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럼 앞으로 일본이 약탈해 간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하실 건지,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저희는 이 사업의 성패 여부를 떠나 의병의 후손으로서 당연히 할 소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천지역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앞으로 한일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명분을 국민들이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이 사업은 지속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되며, 이를 위해 매년 의병제 기간에 집중하겠습니다.
제천의병의 후손으로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심포지움, 세미나 등의 학술회의를 개최해 나갈 것이며, 자라나는 세대와, 일반인들에게 우리 문화재 알리기 운동으로 문화재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설 전시관이 마련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사업은 분화해서 진행할 계획이며, 우선적으로 심포지움을 진행하고, 2차로 전시회, 문화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차 사업으로는 주한 일본대사관 및 일본정부를 방문하여 문화재 반환요청을 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일본천황과의 면담 및 일본내의 개인박물관을 찾아 우리문화재 반환을 설득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천 시민대표단을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대표성을 갖춘 지역인사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최대 걸림돌인 사업비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체적인 구상은 보다 확대될 것이며, 의림포럼 에서는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위의 내용으로는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정확히 상황파악이 안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운동의 주체가 지방 중심이든 수도권 중심이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없는 이 시대에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유산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