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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환자 정완교 할아버지의 ‘더부살이’ 생활
서울시 진관내동 슬래이트 단층집. 계절은 초가을 앞에 서있지만, 방안은 찜통이다. 구닥다리 선풍기가 힘겹게 더운 바람만 토해내고 있는 그 방, 한 곁에 수북이 쌓인 플라스틱 약병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꺼진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 집에서 5년째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정완교 할아버지(69)를 만났다. 힐끔힐끔 쳐다 보기만 하는 정 할아버지가 영 못 마땅한 눈치다. 부담스러운 눈빛이 역력하다.

“11년 전 만해도 서울 개포동 비닐하우스 천막치고 살았어. 6ㆍ25전쟁통에 부모님 모두 잃고, 34살 되던 해에 상경했어. 포장마차, 노점상, 막노동 안 해본 것이 다해봤지. 이 맘 때, 노점상 자리싸움하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졌었지. 그래도 다행인지 걸을 수 있을 만큼 조금 나아지더군…, 참 이때 내가 ‘아들’처럼 여기는 경식을 만났어.”

정 할아버지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박경식 씨(55). 종로통에서 노점상 하다가 어렵게 사는 정 할아버지 사는 모습을 보고 함께 살자고 제안했던 사람이다. 이때부터 정할아버지의 ‘더부살이’ 생활이 시작됐다. 박 씨는 살뜰히 챙겨주지만, 그래도 마음 한 곁은 미안함이 꽉 들어차 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보고 ‘부자지간’이라고 소문까지 나있더라고. 그런데 경식이 심장에 문제가 생겨 마땅한 일도 못 찾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녀, 얼굴 보기도 힘들어.”

정 할아버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 자식도 없다. 이러다보니, 박 씨에 대한 걱정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

“결혼? 팔자지 뭐! 어려서 뜀틀 넘다 왼팔을 크게 다쳤어. 평생 병신처럼 살았어. 중학생 때는 늑막염에다 폐결핵까지 앓게 되면서, 그야말로 질병에 대한 열등감으로 여태껏 살아왔어.”
정 할아버지가 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요즘 들어 정 할아버지는 큰 근심이 생겼다. 기관지 염증으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얹혀살고 있는 집이 곧 팔리게 됐기 때문이다. 더더욱 믿고 의지할 경식씨와 떨어져 살 생각만으로도 밤잠을 설친다.

“이 집이 곧 팔린데…. 더부살이 하는 주제에 경식이와 떨어지면 큰일이야. 나 참. 한달 정부지원금 20만원으로 근근이 연명만 하고 처지에 최근 국민기초수급자 무료조제목록에서 빠진 변비약, 혈액순환제 같은 것을 고스란히 돈 주고 사먹어야 할 판에 함께 옮겨 갈 집을 얻을 수나 있겠어?”

정 할아버지. 힘겹게 말을 또 잇는다. “전생에 죄가 많아 이렇게 사는 가봐. 남의 신세만 지고 사니 답답하기만 하지….”

끼니와 빨래는 은평노인복지관에서 재가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집 문제 만큼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정 할아버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흘러간 옛 노래에 마음을 싣는다. 호흡이 짧아 제대로 따라 부르지 못하지만, 흥얼거리며 고개만 연신 떨군다.

주소 :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 388-14
전화번호 : (02)383-9515
후원계좌 : 서울은행 34704-1933702(예금주 정완교)

김철우 기자
in-gan@buddhapia.com
20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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