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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잃은 지도 38년 째. 화면에 꽉 차 흐르는 두 세 겹의 굵은 가로줄을 김 노인이 볼 수 없지만, 고스란히 남아있는 어머니 박 씨의 체취만큼은 느낄 수 있다. 평생 동안 그림자같이 함께 했던 어머니 박 씨. 김 노인의 다름 아닌 ‘눈’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날, 이렇게 유언하셨지. ‘내가 죽거든 따라 죽어라. 장님이라고 남에게 천대받지 말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매년 다가오는 6월이 되면, 내 삶을 이렇게 만든 6.25를 생각하게 돼. 한 맺힌 그날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때 떠나려고….”
1950년 한국전쟁. 김 노인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됐다. 51년에 징집돼 전쟁에 참전한 김 노인은 총알 파편에 왼쪽 눈을 크게 다쳤다. 이후 또다시 60년 군에 입대하게 된 김 노인은 그 때 후유증에 인한 ‘백내장’으로 왼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는 2년 뒤, 교감신경마비인 ‘망막박리’란 병으로 마저 남은 오른쪽 눈까지 실명한다.
“그 해 죽을 작정으로 두 번씩이나 수면제를 한 통씩 먹었어.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더라구. 그런데, 세상은 무심하게도 날 다시 살려 놓더군.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앞으로 어머니 가슴에 못 박고 살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고개를 떨구는 김 노인. 요새 들어 17년부터 앓아오던 ‘협심증’이 심하게 도졌다. 한달에 두 번씩 가야하는 병원 길. 시각장애인 김 노인에게는 ‘전선’을 누볐던 것만큼이나 항상 아슬아슬 하다. 상의용사 생활지원비가 아닌 생활보호대상자로 지급받는 한달 28만원. 15만원 넘게 들어가는 병원비와 약값, 그리고 5만원 남짓의 공과금을 치르고 나면 생활은 언제나 빠듯하다.
혼자 웅크리고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기만 한다는 김 노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살림살이와 먹고 사는 문제들. 매일 한 끼는 인근 복지관에서 도시락 보급을 받는다지만, 나머지 끼니해결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우 한달에 한번이나 할 수 있을까? 빨래에서부터 바깥 일 보는 것까지, 앞 못 보는 김 노인에게는 그야말로 ‘산다기’보다 그날그날 연명만 하고 있는 처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위 손길을 김 노인은 너무도 아쉬워한다.
6월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김 노인. 흔히 말하는 ‘호국의 달’ 6월은 아직까지 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잔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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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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