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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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박스'서 사는 사춘기 소녀 나라
강남역 번화가. 병풍같은 빌딩 숲을 한참이나 헤치고 나서야 주차장 옆 간판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코끝을 자극하는 화학본드냄새와 갖가지 공구가 나뒹구는 휑한 공장 안, 그 한 켠에 초라해보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자리잡고 있다. 햇빛은커녕 환풍조차 되지 않는 이 곳은 다름아닌 나라네 가족의 보금자리다.

사춘기 소녀 나라(16, 진선여중3). 막 학교에서 돌아온 나라는 교복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아버지 이상진 씨(47)와 팔순이 넘은 할머니의 약부터 챙긴다. 최근 들어 아버지 이씨의 간질환이 심해지면서 정신을 놓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 학교에 가도 집안 걱정에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나마 아버지 곁을 지켜오던 할머니 최진규 씨(83)마저 류마티스 관절염이 다시 도져 거동조차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라의 키와 맞닿는 낮은 천장. 지하 식당의 환풍관이 가로지르고 지나가는 탓에 온갖 먼지와 냄새가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열어 놓을 수도 없다. 이러다보니 이곳 식구들은 호흡기 질환을 몸에 달고 지냈다.

나라네 식구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8월. 아버지 이 씨가 95년에 ‘간경화증 말기’ 진단과 함께 일종의 간질증세를 보이는 ‘간성혼수’라는 병을 얻게 되면서, 급격하게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간성혼수’라는 병은 횡성수설하고,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할 때가 많아 잠시라도 눈을 뗄 수는 상황이어서 나라는 학교조차 가지 못했다. 급기야 97년에는 어머니가 생활고에 비관한 나머지 이혼해버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렇게 지내기를 벌써 7년째. 그동안 아버지 이씨의 병원비와 수술비로 전재산을 탕진해버렸고, 이것도 모자라 은행돈까지 쓰게 되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아버지 이 씨는 신용불량자가 돼버렸고, 이런 이유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 제외돼 정부지원금조차 없이 힘들게 생활을 하고 있다.

한달에 15만원 넘게 들어가는 아버지의 병원비와 10 여 만원의 공과금 등의 생계비는 전적으로 친척들과 친구들이 보내주는 30 여 만원으로 산다. 이러다보니 그날그날 ‘연명만 하는 처지’에, ‘무용 안무가’가 되고 싶다는 나라는 이미 그 꿈을 접은 지 오래다.

나라의 손등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그저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 병이 낫게 되는 것 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나라. 사춘기 소녀가장의 어깨가 한없이 움츠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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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 (02)557-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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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 기자
in-gan@buddhapia.com
200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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