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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소년 원재(14, 노원중1). 원재의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며칠 전부터 심상치 않던 할머니 강봉이(84) 씨의 심장병이 다시 도졌다. 이틀 밤을 할머니 곁에서 꼬박 새운 원재. 밤새 TV를 켜놓고 졸지 않고 버텨봤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가슴 통증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누나 현정이(15, 노원중2)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아직도 냉기가 싸늘한 방안. 군데군데 장판이 떨어져 나가 시멘트바닥이 훤히 드러난 곳을 군용 담요가 궁색 맞게 덮고 있다. 방 한편에 걸린 큰 달력. ‘할머니 병원 가는 날’, ‘약 타오는 날’이라는 이들 남매의 메모들이 빼곡하다. 할머니 강 씨가 하루에 한번씩 병원을 드나들다보니, 생활은 두 남매가 꾸려가다시피 한다. 물론 궁핍한 생활이라 챙길 것은 별로 없다. 잘 먹어야 하루 두 끼, 그것도 밥에 김치가 전부다. 입을 옷도 여유가 없어 빨래도 자주 할 형편이 못된다.
이들 가족이 녹천변 뚝방에 둥지를 튼 것은 13년 전부터. 거창에 살던 할머니 강 씨가 원재 ‘돌잔치’를 보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아예 이곳에 눌러 앉게 됐다. 원재 엄마가 덩그러니 ‘돌잔치’상만 차려 놓고 가출해버렸기 때문이다. 놀랄 겨를도 없이 할머니 강 씨는 원재와 두 살 현정이를 맡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급기야 원재 아버지마저도 생활고를 비관한 나머지 집을 나가버리면서 살림은 급격히 기울었다.
“부모한테 한참 귀여움 받고 자랄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긴 한숨을 내쉬며 약봉투를 만지작거리던 강 할머니는 “나라도 얘들한테 짐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라며 두 남매의 쳐다보고는 눈물을 글썽인다.
이 세 식구는 정부로부터 나오는 소년소녀가장 지원금 3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을 한다. 하지만 전기세, 수도세 등 공과금 15만원을 치르고 나면, 병원에 할머니 약 받으러 갈 교통비마저 여유가 없다. “과자도 못 사먹겠네”라고 말을 건네자, 원재는 말없이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는 그래도 괜찮아요. 할머니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요. 몇 년 전 위수술을 받으셨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요즘엔 배가 퉁퉁 부어서 진지도 잘 못 드세요.”
원재는 홍명보 선수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요즘엔 돈 많은 사장님이 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은가보다.
원재의 꿈까지도 빼앗아가고 있는 가난. 하지만 어린 원재에게는 ‘꿈’보다 지금 당장 할머니 약값과 과자 한 봉지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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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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