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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고혈압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엄영섭(72) 씨, 좌골신경통으로 잠시도 앉아 있기 힘든 할머니 박옥이(67) 씨. 이들 노부부가 아이들의 할머니ㆍ할아버지가 아닌 ‘부모 노릇’을 시작하게 된 것은 10년 전 작은 아들이 행방불명된 후부터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지용이 엄마가 가출해버렸고, 작은 아들 또한 충격을 받아 집을 나가버렸다. 그러다보니 졸지에 고아가 되다시피 한 지용이를 거둬 키우게 됐다. 게다가 6년 전 큰 아들마저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 대용이와 미정이 남매 역시 이들 노부부가 맡게 됐다.
이들 노부부의 지나온 삶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기구하다. 할아버지 엄 씨는 40년 전부터 결핵을 앓게 되면서 가족의 생계는 고스란히 할머니 박 씨가 꾸리게 됐다. 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45년 넘게 수발을 들다보니,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의 연속’이었다.
“큰 아들 놈하고 서울 상암동 난지도 쓰레기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어요. 큰 아들에게 참 많이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아들 녀석이 갑자기 쓰러져 뇌수술만 다섯 번 넘게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어요. 바깥양반과 시어머니까지 노환으로 꼼짝달싹 못하고 집에만 있을 땐, 막막했어요.”
요새 들어 박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낙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받아온 상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하는데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다 잠든 아이들을 볼 때면, 측은한 마음에 가슴만 쓸어내리곤 한다.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간 지용의 교복도 인근 복지관에서 얻어다 입혔다.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죄책감까지 들었다.
이들 가족의 생계비는 할아버지 엄 씨 앞으로 나오는 생활보호대상 지원비 40만원이 전부. 전기세, 아파트 관리비 등 공과금 25만원을 치르고 나면, 다섯 식구는 15만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한다. 더 이상 궁핍할 수 없는 생활이다.
“아이들만이라도 배불리 먹일 수 있어야 할텐데….”하며 할머니 박 씨가 말끝에 흐느끼고 만다. 보청기를 끼고 있어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할아버지 엄 씨가 표정만으로 다 이해했는지 웅크린 박 씨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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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2)982-7754, 계좌 국민은행 052-24-0165-780 예금주 엄영섭
김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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