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3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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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살리기’ 비구니 스님들이 나섰다
회색빛 승복과 밀짚모자를 쓴 5명의 비구니스님들이 2월 4일 대전의 도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라는 간이 플래카드를 바랑에 붙인 이들 스님들은 1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출발, 25일간의 대장정을 걷고 있는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단.

동안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선 순례단은 "천성산 240m 지하에 경부고속철도가 관통하게 되면 생태계 보고로 일컬어지는 고층습지가 파괴되고 내원사 계곡이 메마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훼손 위기에 직면한 천성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거를 박차고 거리로 나서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치열한 수행처를 떠나 번잡함으로 가득한 도심에 나타난 스님들의 행색은 여느 수행납자와 다를 바 없었지만, 당연히 선방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있어야 할 그들의 어깨와 바랑에는 ‘아름다운 천성산 살리기’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라는 조그만 깃발과 어깨띠가 둘러져 있었다.

천성산 환경보호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율스님과 4명의 내원사 선방 납자들은 “희귀한 고층습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고속철도 구간을 따라 도보로 순례를 하고 있다”면서 시민들이 함께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지나는 상가와 가정마다 천성산이 왜 보존돼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순례를 시작하는 스님들의 모습에는 결연한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환경단체와 간담회

선방에서 수행에 전념해야할 스님들이 자리를 박차고 국토순례를 나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천성산의 자원과 생태계, 사찰 환경이 훼손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예부터 천가지 연꽃이 핀 것 같이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불리웠던 천성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내려온 낙동정맥의 중심부로 고층산지에 크고 작은 늪이 발달돼 있어 다양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화엄늪과 밀밭늪 등 22곳에 이르는 습지가 천성산 곳곳에 흩어져 있어 우리나라 최대의 중·고층 습지지대로 꼽히고 있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지난해 9월 천성산을 관통하는 지하구간 13.3㎞중 내원사 소유의 3㎞ 구간에 대한 지하이용권 보상액을 수령할 것을 통보해 왔다. 내원사는 자연생태계 파괴와 지반침하, 수맥변화로 인한 습지 훼손 등이 우려된다며 20여 불교, 환경단체와 함께 천성산을 우회하는 노선으로 변경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고속철도건설공단이 2003년으로 계획돼 있던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를 앞당겨 오는 3월경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혀옴에 따라 내원사의 스님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국토순례 대장정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지율스님은 ”환경부가 1일부터 화엄늪을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만큼 천성산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94년에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습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면서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다시 실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속철도건설공단은 습지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말 천성산 일대에 대한 1년간의 공동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자고 약속해놓고, 공정이 바쁘다면서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지율스님 등 5명으로 구성된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단’은 1월 22일 부산역을 출발해 울산, 경주, 대구, 대전, 천안 등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구간을 따라 25일간의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일정한 숙소도, 공양도 정해지지 않은 출발이었다.

비구니스님들의 도보수행은 사찰에서의 수행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거리에서도 안거와 같은 수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참선수행이 아닌 만행이라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아침 예불로 시작되는 스님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9시간 동안 25㎞씩 걸어야 하는 강행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때면 온몸이 녹초가 되지만, 천성산을 지키겠다는 서원은 더욱 굳어진다.
도심을 걸을 때는 상가와 가정을 방문해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한편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차량만이 질주하는 도로를 걸을 때는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높이 치켜들고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또 구간마다 50여개 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습지보존을 위한 간담회도 벌여나가고 있다. 스님들의 도보순례는 도로에서 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위험과 매섭게 몰아치는 강추위와 맞서 싸워야 하는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비구니 스님의 몸으로 묵묵히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는 1200리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성산을 지키겠다는 스님들의 결연한 서원이 담겨져 있다.

25일간 대장정 15일 회향

지율스님과 함께 국토순례에 나선 4명의 스님들은 산문밖을 나서지 않겠다는 1년 결사를 맺은 비구니 스님들이다. 그런 스님들이 결사와 안거를 뒤로 하고 순례에 참가한 것은 내원사를 비롯한 천성산내 사암들의 수행환경을 지키고, 후배납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비록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순례를 나서기 전 법당에서 있었던 용맹정진을 떠올리며 묵묵히 순례를 이어왔다.

부산역에서 시작된 스님들의 도보 순례는 오는 2월 15일 서울역에 위치한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환경부를 항의 방문하는 것으로 25일간의 대장정을 회향할 예정이다. 그러나 순례는 천성산을 살리기 위한 활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년째 벌이고 있는 천성산 살리기 운동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순례단에 합류해 스님들을 지켜본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임희자 정책실장은 “이번 국토순례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순례인 만큼 순례단의 뜻이 오랫동안 환경을 지키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율스님 등 5명의 내원사 스님들은 천성산과 수행환경을 수호하기 위해 1월 22일 부산역 광장을 출발, 경부고속철도 구간을 따라 국토순례를 시작했다. 4일 대전 도심으로 들어선 순례단이 대전역 광장을 지나고 있다.

◇순례단의 표정에서 천성산을 살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천성산 살리기 국토순례’라는 간이 플래카드를 붙인 바랑.

◇순례단을 이끄는 지율스님이 시민들에게 천성산을 관통하는 경부고속철도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모습과 경부고속철도 노선도.


◆천성산은
생태계 보고…불교성지
천성산은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는 중·고층 습지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적으로도 많은 설화와 불맥을 근근이 이어온 수많은 사찰을 간직한 곳이다.

천성산은 99년 화엄늪과 밀밭늪이 발견된 이후 지난해 9월에는 13곳의 소규모 습지가 보고되는 등 22개의 크고 작은 습지가 흩어져 있는 습지 밀집지역이다. 그동안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어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화엄늪과 밀밭늪은 환경부에서 자연생태계보전지구로 지정한 대왕산 용늪이나 왕등재늪에 비해 생태적 보전가치가 전혀 뒤지지 않은 습지로 알려져 있다. 화엄늪에는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희귀보호식물과 황조롱이, 참매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695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생태적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성산은 불교와 관련된 많은 설화와 지명을 갖고 있다. 화엄늪이 있는 화엄벌은 1300여년 전 원효스님이 화엄경을 설했다고 전해지며, 내원사를 비롯한 안적암, 미타암, 조계암, 금강대 등 12곳에 이르는 수행도량에서 불법의 맥이 이어지고 있는 불교성지이기도 하다. 특히 내원사는 경봉, 향곡스님 등 근대의 선지식들이 정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박봉영 기자
bypark@buddhapia.com
200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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