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에 사는 박여래심 보살(41)은 최근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동사무소로부터 모자보호원에 입소를 허가받았다. 지난 여름 신청서를 냈던 박 보살은 모자보호원 입소 경쟁이 워낙 치열한지라 뛸 듯이 기뻤다. 3년 전 사업실패로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어린 두 남매와 함께 삶을 구걸하다시피 했던 악몽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입소절차를 밟기 위해 찾아간 모자보호원에서 박 보살이 받아 든 것은 ‘개종’하라는 강요성 압력이었다. 모자 보호원 원장은 그곳에 입소한 모든 가구가 기독교인이며, 불교를 믿었던 한 가구도 개종을 해서 지금은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종교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비웃기까지 했다.
박 보살은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쥐들이 득실거리는 화장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부엌의 지하 단칸방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깨끗한 곳에서 살게 됐다고 좋아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박 보살은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입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려서부터 믿어온 불교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어렵게 살더라도 종교를 바꾸는 것은 불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려오는 허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불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기독교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는데 반해 불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불교가 원망스러웠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각 종교단체 및 사회단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모자복지 시설은 모자 보호원 39곳을 비롯해 모자자립시설, 모자일시보호시설, 미혼모시설 등 모두 60여 곳에 이른다.
이중 천주교와 개신교가 운영하는 곳은 30여 곳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가 운영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불교계 복지시설은 대략 150여 곳이 넘는다. 다른 종교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최근까지 시설이 계속해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복지시설은 몇 곳에 불과하다. 사회 구석구석까지 손길을 뻗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소쩍새마을 같은 복지시설에는 후원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한다. 가까운 불우이웃부터 돌아보아야 하겠다. 어려운 불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종단과 불자들의 자비가 필요한 때다.
한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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