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전 11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도봉산 원각사 계곡 입구의 북한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현장. 산 곳곳에는 붉은 깃발들이 꽂히고 마구 파헤쳐진 산기슭은 붉은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포크레인에 의해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표석은 맥없이 쓰러지고, 지름이 30㎝(수령 20~30년)가 넘는 소나무, 잣나무들도 잘려나갔으며,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도 공사 진입차량들에 의해 흙으로 덮여있었다.
공사현장에 자리잡은 비닐로 만든 작은 법당에서는 10여명의 스님과 20여명의 불자들이 사시 예불이 끝난 후 <산왕경>을 외우며 산신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북한산 관통도로 반대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끝까지 다치지 않고, 고속도로 노선이 의정부 외곽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한마음이 되자”는 간절한 원을 담은 기도는 엄숙하다 못해 비장했다.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저지를 위한 불교대책위’와 시민연대는 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LG건설 외 9개사 민간컨소시엄)가 지난 11월 15일부터 도로 건설을 위해 북한산 (양주군 장흥면~의정부시 호원동) 구간 벌채에 들어가자, 20일부터 이곳 사패산 매표소 옆에 간이 법당을 세우고 천막농성에 들어가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11월 20일 벌목 인부들과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육탄저지에 나선 회룡사 주지 성견스님은 "다른 나라는 등산객이 국립공원 등산로도 못 벗어나게 관리하는데 세상에 국립공원을 파괴하면서 도로를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한 70대 보살은 "나무를 베느니 차라리 내 몸뚱아리를 베어라"며 인부들이 갖고 있던 전기톱을 뺏았으며, 결국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총예산 2조3천3백84억원(국고 9천6백68억원, 민자 1조4천16억원)으로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까지 36.3㎞(국립공원 통과길이 4.6㎞, 터널 4.1㎞), 8차선 고속도로를 만드는 사업.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의 마지막 남은 구간이며, 현재 구리→하남→안양→부천→일산까지 놓여져 있다.
이 공사가 강행될 경우 북한산 소재 30개 사찰이 직간접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 때문에 관련 사찰의 스님들은 지난 10월 24일 의정부시청 앞에서 '관통도로건설 저지를 위한 불교대책위'를 결성하고 의정부 외곽으로 노선을 우회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불교대책위는 서울외곽순환(일산~퇴계원)고속도로 주변 200m이내에 17개 사찰이 소재하는 등 30여개 사찰이 피해가 예상된다며, 2006년 6월 29일까지 공사차량의 출입으로 먼지와 소음, 터널공사시 발파에 의한 진동 및 건물 파손, 공사로 인한 신도 통행 불편 등에 의한 수행환경의 파괴는 물론 차량배기가스로 인한 국립공원의 오염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요 사찰의 예상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진동 피해(송추 원각사), 지하수맥 변화(회룡사), 소음 및 비산먼지(덕천사, 홍법사, 원각사, 천인사, 보현사, 대원사, 약수선원), 경내지 수용(홍법사, 천인사, 보현사) 등이다.
한봉호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전문위원은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중 국립공원 관통구간 생태분야 문제점도 지적했다. 한 위원은 "녹지자연도는 현존 식생을 작성한 뒤 대표지점에서 표본조사구를 설정하고 식생조사를 해서 등급판정을 해야 하는데, 평가서 상 대표지점 표본조사가 없고 종구성표와 우점종 수령도 나와 있지 않다"며 "훼손지역 이식수목 산정 및 터널 입ㆍ출구 지역 생태계 복원의 근거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불교대책위와 시민연대는 12월 4일 조계사에서 시민, 환경, 종교단체를 아우르는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를 위한 시민종교연대’를 결성, 발족식을 갖고 조계사에서 종묘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후 범국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시민종교연대는 이달중에 11월 29일 서울 북부지원에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낸데 이어 환경영향평가 부실에 대한 감사 청구, 건교부 실시계획승인에 대한 취소요구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종교인 선언, 서명운동 등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저지를 위해 본격적인 대규모 반대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에 대해 건교부와 도로공사는 환경단체 주장대로 노선을 변경할 경우 7천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들어가고, 산림훼손 면적이 60%가량 더 증가하며 외곽순환도로의 본래 기능도 떨어진다며 공사강행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생태계 최후의 보루'로서 그 안의 희귀 동식물 및 문화사적 등을 보호하는 생태계 보호기능과 온 국민의 자연 체험과 생태관광 및 휴양, 정서함양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장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정부는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개발 필요에 따라 공원구역 조정과 용도지구 변경, 민원해소용 규제완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불신과 피해의식만을 키워왔다. 이제 국립공원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 상황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윤주옥 사무국장은 “국립공원 관리를 정부투자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위임해서는 안 되며, 국립공원지정관리 운영계획 등의 기획업무를 국가가 직접 총괄하는 '국립공원 관리 전문기구' 설치를 추진해야 한다”며, 새로운 개념의 국립공원 관리를 위해 자연공원법을 대신하는 '국립공원 관리 근거법' 제정을 촉구했다.
1300만 수도권 시민의 허파인 북한산국립공원을 훼손하는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 지금 당장 국립공원 이념과 기능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 시민종교연대 공동대표 봉선사 주지 일면스님 인터뷰
“시민들은 국립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면 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풀 한포기 돌 하나를 채취해도 처벌을 받습니다. 시민들은 이런 규칙들을 기꺼이 지킨 덕분에, 조금씩 제모습을 찾는 북한산을 대견스레 바라보고 있는데, 터널을 뚫고 하루 14만대의 자동차를 끌어들이다니요?”
12월 4일 조계사에서 출범하는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를 위한 시민종교연대’ 공동대표인 일면스님(조계종 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은 “날로 비대해져 가는 서울시와 수도권의 유일한 푸른 허파인 북한산을 살리기 위해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역량을 결집시키겠다”고 말했다.
도로 건설시 30여 곳의 사찰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마지막 남은 생태계의 보고인 국립공원만은 지켜야한다는 일면스님은 “지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북한산에 박은 쇠말뚝을 민간에서 뽑아내고 있는 판에, 정부가 나서 북한산의 심장을 뚫겠다니 말이 되느냐”며 반문했다.
지난 10월 24일 환경단체인 ‘녹색미래’ 공동대표에 추대되기도 한 일면스님은 “생명존중의 종교인 불교가 환경운동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번 북한산 관통도로 저지운동을 통해 종교계 및 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스님은 11월 29일 서울 북부지원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데 이어 건교부 실시계획승인에 대한 취소요구 행정소송, 환경영향평가 부실에 대한 감사원 감사신청, 건교부 장관 및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등 관계자 면담, 서명운동 등을 통해 북한산 살리기 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