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꼽추가 가장 기뻐할 때는 자기보다 더 큰 혹을 짊어지고 있는 꼽추를 보았을 때라는 것인데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는 위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나보다 더 심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내 장애가 작아보이면서 이 정도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어 내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욕심을 잠시나마 거둬낼 수 있었다.
아마 같은 심리일 것이다.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불교방송의 '그리운 등불하나'에는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출연을 하고 있는데 그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이 자기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장애인 봉사를 갔다오면 자기가 얻어오는 것이 더 많다고 하면서 장애인이 천사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처음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겸손이거나 지독한 교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진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한테는 기본적인 연민이 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질투하거나 더 고통스러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면 동정심이 생기고 도와주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의 그런 선심(善心)을 발로시키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못한 대상을 자꾸 만나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들 중에는 잘 사는 사람들만 눈에 뜨인다. 그래서 욕심이 생기고, 시기심이 일어나서 결국은 어리석음에 빠져 고통스럽게 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귀찮아하고 함부로 대한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우리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수확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이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가을이 낭만보다는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을은 맛나는 계절이라기 보다는 겨울이라는 쓴 맛을 기다리는 근심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런 이들의 걱정은 아랑곳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추석명절 연휴로 들떠있다. 추석 선물세트가 얼마라는 둥 하며 백화점마다 고급물건들을 쌓아놓고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긴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세상이 들뜰수록 더 외로워지고 서글퍼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핏덩이 상태로 버려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왜 버려졌는지도 모르면서 보육원에서 사랑에 목말라하며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배 아파 낳은 자식들에게 외면 당한 노인들은 그래도 자식 걱정을 하며 양로원에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심한 장애 때문에 우리 사회와 격리된 채 세상을 그리워하며 사는 장애인들은 재활원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수해 지역에서 물난리를 겪은 수재민들과 수해 복구를 기다리고 있고 소년소녀 가장들은 온전한 가정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오히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곳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찾아오던 이들도 명절을 지내야겠지.' 오지 못하는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들의 빈 자리에는 쓸쓸함만이 남는다. 우리 사회는 정녕 이렇게 메말라가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우리들은 마음이 있어도 표현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일 게다. 그래서 무정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선심을 이제는 끄집어내어 보여줄 때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착한 마음을 착한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가 행복할 때일수록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봐야 하고 내가 바쁠 때일수록 다른 사람의 소외를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올 추석 명절은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좋은 일을 실천하는 보시행(布施行)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골고루 부처님의 자비를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