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다니기에 좋은 완연한 봄이다. 산과 들에 앞다퉈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들이 천년 고찰(古刹)에 눈부신 생동감을 선사한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 향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 고창 선운사, 해남 미황사와 대둔사, 여수 흥국사, 하동 쌍계사 등 남도의 천년 고찰로 떠나보자. 흰 매화와 벚꽃, 연분홍 매화, 노란 개나리, 목련으로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유서깊은 가람을 둘러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 선암사
조계산 남쪽 동백과 매화, 단풍나무 울창한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도선국사가 중창한 역사 깊은 대가람 선암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이 이곳에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원년(861) 도선국사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 선풍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선암사에 들어서면 1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승선교 밑을 유유히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는 세속에 찌든 온갖 번뇌를 씻어준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세운 이 승선교는 조선시대 무지개 다리를 상징하며 다리밑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은 선암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선암사는 요즘 대웅전 후불벽화 복원작업이 한창이어서 조금 번잡하지만 매화꽃길이 화사하다.
◇ 송광사
승보종찰(僧寶宗刹)인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11년간 설법한 이래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國師)가 선종의 전통을 이었다. 경내 입구 왼편에 자리잡고 있는 성보박물관에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과 고려 고종제서(국보 제43호) 등 진귀한 국보급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송광사는 청량각, 일주문, 세월각, 우화각, 천왕문 등 중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가람배치를 자랑한다.
◇ 쌍계사ㆍ칠불암
섬진강 줄기를 따라 북상하는 벚꽃을 만나려면 하동 쌍계사에 가면된다. 꽃으로 봄을 여는 의미를 지닌 ‘화개(花開)’동과 접한 지리산 자락의 쌍계사는 십리벚꽃길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봄내음의 향기를 맡으며 쌍계사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만나게 된다. 신라 진성여왕이 쌍계사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공덕을 흠모해 당대 문장가였던 최치원에게 글을 짓고 쓰게 한 것으로 그의 사산비명(四山碑銘)중의 하나로 꼽힌다. 쌍계사보다 훨씬 더 지리산 깊숙이 자리잡은 칠불암 가는길은 지리산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열리며 봄꽃들이 곱게 겹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여행길이다. 한 번 불을 지펴 놓으면 49일 동안이나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아자방(亞子房)의 온돌로도 유명한 칠불암은 아름다운 목각탱화와 새로 복원된 아자방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인상깊은 사찰이다.
◇선운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에서는 만개한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선운사에서 순례자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얼마전 타계한 이 고장 출신의 미당 서정주 시비이다. 미당이 노래했듯이 선운사는 동백꽃이 있어 완성된다. 선운사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추사가 쓴 백파대사사적비와 채제공이 썼다는 설파대사사적비다. 이 중에서도 백파사적비에 새긴 행서체 글씨는 추사 말년의 최고 명작으로 꼽힌다. 도솔산의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다면 산내암자인 도솔암을 가보는 것도 좋다. 도솔암에서 내원궁이라는 간판을 따라 108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 지장보살(보물 제280호)이 모셔져 있는 상도솔암이 나온다. 특히 이 불상 앞에는 항상 사람들의 기도가 끊이질 않는다. 벚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여수 흥국사에도 형형색색 경내를 수놓은 봄꽃내음을 맡으며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해남의 미황사와 대둔사, 강진 백련사에서도 동백꽃과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선암사와 미황사는 봄꽃의 계절 4월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꽃나들이 코스로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곳이기도 하다.
김주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