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육체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실현할 목적의 게놈 프로젝트가 인간 유전자(게놈) 지도 공개로 곧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유전자 지도를 근거로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면 각종 난치병 치료는 물론 생로병사의 비밀도 벗겨지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바꾼 '맞춤인간' 시대가 도래하는 등 윤리·도적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생물학적 특성을 선천적인 것, 즉 자연의 이치로 간주해 왔던 인류에게 생명공학은 이제 인간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과학의 기술이 빚은 인간생명에 대해 불교는 과연 그 존엄성과 자연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윤리·도덕적 측면의 문제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인간생명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세 차례에 걸쳐 학계 및 전문가의 견해, 교리적 해석 등을 통한 불교적 시각에서 '게놈 프로젝트'를 조명해 본다.
목차
1. 유전자 조작, 인간존엄 파괴인가?
2. 불교적 관점에서 본 인간 유전자 조작
3. 현재의 행위(業)가 중요하다
■게놈 프로젝트의 목적과 문제점
인체게놈(유전자)이 완벽하게 분석되면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유전자 기능을 알아냄으로써 암은 물론 치매나 당뇨,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에서부터 에이즈까지도 정복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바이러스성 질환도 해당 바이러스와 반응하는 유전자를 찾아 기능을 조절하거나 교체해 버리면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게 된다. 또 인공 장기를 예비 부품처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게놈 프로젝트는 바로 오래 살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소망을 이뤄낼 목적으로 시작됐으며, 그런 인류의 꿈은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가까운 미래에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형질이 제거되거나 교체된 아이를 낳는 날이 올 것으로 과학계는 예상하고 있다. 즉, 맞춤인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공 장기에 인공 자궁, 인공 망막, 전자 코 등 인체 어느 부위든 원하는 대로 갖출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뇌의 복제까지도 이뤄지게 된다. 2030년쯤으로 예상되는 두뇌의 상세지도 완성은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인간 지능을 복제하게 되고, 따라서 원할 경우 수백만배 강화된 '뇌'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21세기 인간은 자신과 기술을 섞은 새로운 종(種)이 된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월한 계급'과 '그렇지 않은 계급'으로 나뉘는 이른바 '유전자 계급 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열등 유전자를 몰아내 인간특성을 '개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인류가 경제력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것을 의미하며, 열등한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또 인간복제술의 상업적 이용이 횡행하고, DNA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개발되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첨단기계로만 구성된 기업들도 속속 생겨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게놈 프로젝트가 목적했던 것과는 반대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가치는 파괴되게 된다.
■윤리·도덕적 문제
유전자 조작은 '자연'과 '사회'의 경계가 무너짐을 의미한다. 과학적 기술이 개입된 사회가 자연의 결정권에 해당됐던 '생명의 탄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유전공학은 생물체에 주어진 유전형질을 인위적으로 변형 개조하여 새로운 형질을 가진 생물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생물의 종(種)과 속(屬)의 차이를 없애게 된다.
유전공학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생로병사와 인간의 희비애락은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유전공학이 보다 완전한 인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 존재를 불완전하게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전공학에서는 인간이든 어떤 생명체든 극복과 보완의 대상이며,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관념은 유전공학에서 볼 때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설도 성립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유전공학의 생명관은 '유전자 결정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생명관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에서는 생명의 탄생과정을 태생(胎生·모태에서 태어나는 것)·난생(卵生·알에서 태어나는 것)·습생(濕生·습기로 태어난 것)·화생(化生·다른 것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태어나는 것)의 사생(四生)으로 분류하고, 이들 육취중생이 그 생명의 탄생과정과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생명의 기원보다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중되고 존엄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계급은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태어나고 어떤 유전자를 받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편 서로 다른 생명관과는 달리 불교적 관점에서의 윤리·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서로 맞서고 있다.
우선 탄생과정에 개의치 않고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불교가 단순히 유전자 조작행위에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유전자 조작이나 생명복제는 한 생명 속에 만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불교적 관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펴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전자 조작이라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정신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반대로 생명질서를 유지하는 다르마의 원리, 즉 연기와 윤회의 법칙을 파괴하며, 인간의 실체가 부정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또 아직 결과도 모른 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교리적 해석 유보'의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본교리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생명공학을 통해 기대되는 선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명우 기자
■게놈이란?
'게놈(Genome)'이란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담고 있는 그릇에 해당하는 염색체 세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성한 용어. ""genome""을 독일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게놈 프로젝트""란 생명체의 DNA 서열을 모두 밝히려는 계획을 말한다.
인간게놈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각각 쌍으로 된 23개, 즉 46개의 염색체로 구성돼 있으며, 인간게놈의 염색체 속에는 약 30억개의 DNA염기쌍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키, 피부색, 생김새 등 외형적 특성 외에 성격과 소질 등의 유전형질이 결정된다. 한명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