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 앞에선 종교의 장막도, 분단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종교간 벽을 넘어 어우러진 7대 종단의 청소년들은 천지의 장엄함에 말을 잇지 못했고, 이들의 통일 염원 노래가 울려퍼지자 천지는 벅찬 감격으로 화답했다.
10월 1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젊은이들은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에서 나온 중 고 대학생 68명.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가 마련한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순례에 참가한 학생들은 백두산을 향했고, 같은 시간 26명의 학생들은 한라산에 올라 겨레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했다.
학생들은 천지에서 통일기원문을 낭독하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통일을 노래했다. 천지의 장엄함에 말을 잇지 못하던 학생들은 등정을 끝내고 감정을 추스린 후 각양각색의 소감을 쏟아냈다.
어떤 학생은 "천지의 물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너와 나를 넘어서는 하나됨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했다. 이미라(연천중 3학년)양은 "이번 순례가 어쩌면 내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천지의 감동 한 켠에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우리 땅을 코 앞에 두고 중국 땅으로 백두산을 올랐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다음에는 꼭 우리 땅으로 오르겠다"고 호기있게 외쳤다.
29일 서울을 출발한 백두산 평화순례단은 이튿날 옌벤(延邊) 조선족 자치구의 옌지(延吉)을 거쳐 투먼(圖們) 지역의 씨감자 수확 현장을 방문했다.
눈을 들면 두만강 너머 북한이 보이는 이 곳에서 농업발전협의회와 코스포가 생산하는 씨감자 전량이 북한에 지원되는데 올해 600톤이 수확돼 곧 지원될 예정이다.
서희(진선여중 2학년)양은 "이 씨감자들이 북한으로 넘어가 더 많은 감자 생산의 밑거름이 된다고 하니 뭔지 모를 뭉클함 같은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백두산으로 가는 도중 룽징(龍井)의 용정중학교를 들러 재중동포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졌다. 용정중학교는 시인 윤동주의 모교인 은진중학교 등 5개 학교가 광복후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들어진 옌벤 재중동포의 대표적인 학교. 만난지 몇 분만에 주소를 나눌만큼 이들에겐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었다.
각기 종교가 다른 학생들이 모인 순례단이지만 어색함을 벗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차 안에서, 숙소에서 마치 오랜 친구들이 모인 양 즐거워했고 그동안 다른 종교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도 풀었다.
원불교에서 온 김양희(관저고2학년)양은 "친구들이 원불교의 일원상이 뭘 뜻하는지 물어 가르쳐줬다"며 "서로의 종교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참가 대학생들은 이번 순례를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말자는 데 뜻을 모았다. 최영락(루터신학대3학년)군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순례단 1기로 종교간 화해와 겨레통일운동에 적극 참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3일 서울로 돌아온 이들은 한라산 순례팀과 합류해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외치며 이번 행사를 마감했다.
순례단 단장인 김종수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은 "각 종단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미래의 주인공이다"이라며 "이번 순례가 종교와 분단의 벽을 온 몸으로 허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0.10.04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