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 금욕적인 수묵의 세계가 사진으로 펼쳐진다. 이미지를 한지 위에 인화하는 사진 작업을 해 온 사진작가 이정진씨가 12월 14일까지 한미갤러리에서 ‘2002 붓다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이정진씨는 과거의 흔적만을 남긴채 황폐화된 태국의 불상과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발만 남은 부처, 온몸에 상처 투성인 부처, 팔만 있는 부처 등 이씨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부처는 온전히 제모습을 갖춘 것이 하나도 없다. 더욱이 한지 위에 감광유제를 발라 인화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 때문에 이씨의 작품은 마치 수묵 기법으로 다루어진 한폭의 회화처럼 보인다. 특히 앙코르와트 고목의 뿌리와 가지에서는 자연의 리듬이 살아 숨쉬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창조와 파괴, 예술과 비극이라는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감동과 수묵화가 지니고 있는 정신적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미술평론가 이경성 교수(홍익대)는 “화려한 색채의 욕망을 누르고 금욕적인 수묵의 세계를 탐닉하는 그의 작품은 동양화가 지닌 수묵의 정신적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며 “디지털의 기계적 완벽성을 지양하고 섬세한 수작업을 고집하는 그의 작품들은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감상하게 하는 여유를 가지게 한다”고 설명했다.
91년 뉴욕대 대학원 사진과를 졸업한 이정진씨는 97년과 99년 미국 LA 페이스월덴스타인 맥길 갤러리에서 ‘파고다스’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휴스톤 미술관, LA카운티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02)418-1315
김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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