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는 너무 깨끗해 그림 그리기가 부담스러운 것일까. 옛 기와에 그림 그리는 귀일 스님(안동 봉정사 지조암)이 이번엔 목재로서 구실이 다한 나무에 그림을 그려 화제다.
스님이 화재(畵材)로 선택한 나무는 안동 봉정사 요사채의 서까래와 안동지역 고가(古家)에 사용된 목재들. 주로 소나무로 직경 약 25㎝미만의 원형으로 잘라 고운 사포로 20여분간 문지른 후 탱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당채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귀일 스님이 주로 그리는 것은 차탁과 장식용 소품. 연꽃이 주된 소재지만 종류는 연잎, 연씨, 여러겹의 연꽃 등을 형이상학적으로 디자인 한 보상화가 1백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모양과 채색이 다양하다.
2년전부터 나무에 그리기 시작했다는 귀일 스님은 “사찰 불사에 사용된 재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많은 신도들의 시주로 이루어진 소중한 정재”라며 “이런 중요성을 감안할 때 낡은 나무 서까래들이 개보수시 방치되다 불태워져 한줌의 재로 남겨지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하게 됐다”고 동기를 밝혔다.
또 스님은 “특히 서까래로 사용된 대부분의 소나무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갈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감과 향이 뛰어나 소품 재료로 쓰기에 안성마춤”이라고 설명한다.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포이동 능인선원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귀일 스님은 내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5백여점을 선보일‘보상화 소품전’을 계획하고 있다.
김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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