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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역사문화축제 성료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촉구하고 사적인 삼랑성의 역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축제가 열렸다.

삼랑성 역사문화축제 조직위(공동위원장 전등사 주지 계성스님?ㆍ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는 10월 18~20일까지 전등사 경내와 강화공설운동장 등 강화도 전역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를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는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반환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한국과 프랑스의 미래지향적 발전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축제는 전통상여놀이, 민속깃발축제, 학술세미나, 차문화 한마당, 전통사찰학춤, 열린문화 공연 한마당 등 다채롭게 진행됐다.

특히 서울 마로니에공원 등 행사장 곳곳에서 열린 외규장각도서 반환촉구 서명운동과 삼랑성에 2만개의 등을 밝히는 만등제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동위원장 계성스님은 “전등사 스님들이 주축이 된 우리 선조들이 삼랑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지만 외규장각 도서 297권은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며 ”이번 축제가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범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김두식 기자
doobi@buddhapia.com

사월 초파일 연등회는 고려 중기 때 시작
조선 중종 년간 기점으로 뿌리박아

‘부처님오신날’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잡은 연등축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부터다. 그런데 이때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음력 정월 보름에 연등 행사를 개최했다. 이러한 상원(上元)연등회는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고려시대에도 연등회는 정월 보름이나 2월 보름에 열렸다.

지금처럼 음력 4월 초파일에 연등행사를 연 것은 고려가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1245년, 당시 최고 집권자 최이에 의해서였다.

지난 10월 19일 강화도 전등사 강설당에서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연등회의 전통과 전망’를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이번 학술 세미나를 주최한 강화역사문화연구소 김형우 소장은 ‘고려시대 연등회의 모습과 그 기능’ 주제발표에서 “고려시대 연등회는 정월 보름 또는 2월 보름날에 열렸으며 사월 초파일 연등회는 강화 도읍기 때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조선 정조 때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나 1849년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는 ‘정월 보름에 연등하던 것을 최이가 4월 8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심효섭 가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국가적 행사로서의 연등회가 개최되지 않은 것일 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민간에서는 상원연등회와 사월 초파일 연등회가 계속 열렸다”고 밝혔다.

김 연구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중종 34년(1539)부터 연등회의 비중이 상원연등회에서 사월 초파일 연등회로 완전히 옮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우리 나라 풍속으로서의 연등회는 중종 년간을 기점으로 사월 초파일 연등회로 고착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진철승 연구위원은 “왕실과 국가 주관의 불교의식이 고려조 내내 수 천 회 개설되었으면서도 ‘부처님오신날’은 국가적 예제(禮制)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며 “사월 초파일 연등은 온전하게 부처님오신날을 기리는 행사도 아니었고 국가적 명절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부처님오신날이 공식적인 명절로 자리잡은 것은 일본 침략기 때였으며, 1975년 법정 공휴일로 제정됐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
200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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