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세기말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최소한 10만여 점의 문화재를 무자비하게 약탈해 갔는데도 한국에선 반환에 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뉴스위크 2002년 2월 4일자)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에게 약탈됐거나 불법으로 빼앗긴 문화재들을 돌려받을 해결책은 없는가? 10년째 답보 상태에 빠진 한국과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당사국간의 문화·외교적 갈등을 넘어 국제적 사안으로 떠오른 불법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유네스코 본부와 한국위원회, 문화재청이 9월 30일∼10월 3일 개최한 ‘문화재 반환 촉진 및 불법 거래 방지를 위한 국제 전문가 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덴마크, 나이지리아의 문화재 반환 관련 전문가와 국제경찰 인터폴 관계자 등 25명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약탈 문화재 반환의 법적 근거와 구체적 사례.
특히 약탈 문화재 반환과 관련한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성공 사례가 관심을 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국제소장품관장인 페터 펜츠는 9월 30일 ‘과거 점령 및 전시 유출 문화재 반환’주제 토론에서 20세기 초 덴마크 식민지였던 그린란드에서 약탈한 문화재 3만5천여 점을 1984년부터 17년에 걸쳐 그린란드에 반환한 사례를 소개했다.
3만5천점이 넘는 유물은 덴마크와 그린란드 박물관 사이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가능했다. 각각 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들은 그린란드가 자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유물을 되찾는 것과 덴마크가 자국 박물관내에 그린란드의 값진 소장품을 보유하고자 하는 희망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피터 펜츠 관장은 “문화재 반환은 문화재의 역사를 존중하기 위한 상호 의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법률적 문제는, 특히 소유권과 관련해 볼 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린텔 프로트 국제유산법 자문위원은 “유물의 물리적 양도 없이 소유권만을 양도하는 것은 원산국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몇몇 원산국은 소유권 자체를 잃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또 보유국은 소유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취득했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다”며 “소유권과 유산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관련 유물의 물리적 양도는 꼭 소유권의 양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제법과 국내법이 다른 경우도 문제가 된다. 스테판 터너 독일 사르랜드 대학 교수(법학과)는 영국의 예를 들며 “원 소유주가 문화재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경우에만 반환을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중앙과학원 국제법률협력센터 연구실장인 마리 코르뉴는 “반환 원칙에는 동의하나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내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날 회의를 지켜본 문화개혁시민연대 김성한 문화유산위원회 간사는 “외국의 경우 약탈 문화재에 대하 목록이라도 정리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제시대 일본으로 반출된 불교문화재의 경우 사찰의 기록이 안 남아 있거나 폐사지에 있던 유물의 경우는 아예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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