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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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개산 1200주년 불전 헌공 다례
개산 1200주년을 기념하는 법요식이 열린 10월 1일 해인사. 개산조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을 기리는 법요식이 끝났는데도 도량 풍경이 분주하기만 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보살들이 가을 단풍처럼 도량 여기 저기를 물들이며 오가고, 대적광전 앞마당에는 넓은 돗자리가 펼쳐지고 좌복이 깔렸다. 해인사 창건 당시 세워진 장중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회색빛 좌복과 차도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놓였다.

해인사가 개산 120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한 불전헌공다례. 해인사 강원 스님들의 차모임 다경원(茶經院)의 비구 스님 5명과 산내 암자 삼선암 비구니스님 5명을 비롯, 우바새 우바이 120명이 정렬돼 있는 다구(茶具)앞에 앉았다. 10대제자를 상징한 10명의 스님들과 120명의 일반 다인들은 1200년 역사를 상징하며 사부대중을 대표해 부처님전에 차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타종과 함께 주지 세민스님, 강주 지우스님 등의 헌향, 헌화가 먼저 올려졌다. 진향을 피워 최고의 지혜를 내려는 마음과 깨달음의 묘과(妙果)인 해탈을 얻을 때까지 부단히 정진하겠다는 서원을 담은 꽃, 향 공양이 끝나자 세 번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점다(點茶)가 시작됐다.

다관에 마른 차잎을 담고 끓는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점다, 빛깔, 향기, 냄새, 맛이 없고, 신령한 진수(眞水)를 부어 정성껏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을 때, 찻물 끓는 소리를 내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돗자리와 땅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소소소’를 연발해 ‘톡톡톡’ 찻물 끓는 소리와 화음이 절묘했고 그럴수록 대중들의 고요는 깊어졌다. 말라있던 땅에 빗물이 스미며 피어 오른 흙내음이 차향에 보태져 차향이 더욱 향그러웠다.

내리는 비로 옷이 젖고, 앉아 있는 자리마저 젖어 들었지만 부처님전에 올려질 차를 우려내는 다인들의 손놀림은 고요하기만 했다. 진색(眞色), 진향(眞香), 진미(珍味)를 내는 진다(眞茶)와 진수가 중정(中正)의 도에 의한 점다의 솜씨를 만났을 때 비로소 ‘참마음’의 세계가 담긴 감로다(甘露茶)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빗속에서 일체의 분별을 내려놓고 텅빈 마음으로 차를 우리는 다인들의 모습은 그대로 선다일여(禪茶一如)의 경지를 느끼게 했다.

“헌다하시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다완을 높이 받쳐든 스님들이 먼저 대적광전을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그 뒤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120명의 차인들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 수행 정신을 일깨우며 차례차례로 계단을 올랐다. 한걸음 한걸음 부처님전을 향해 나아가는 차인들과 함께 지켜보는 대중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헌다가 끝나자 다게가 이어졌다. 동참 대중들도 나직히 마음속으로 따라 외었다.

“아금청정수 (我今淸淨水) 변위감로다 (變爲甘露茶) 봉헌삼보전(奉獻三寶前) 원수(자비)애납수(願垂慈悲哀納受) - 제가 지금 맑은 차를 감로의 차로 만들어서 삼보님전에 받들어 올리오니 원컨대 어여삐 여겨 거두어 주소서”

삼귀의, 반야심경, 헌향, 헌화, 점다 및 헌다, 다게의 순서로 50여 분간 이어진 이날 불전 헌공다례는 퇴공으로 끝을 맺었다. 삼보에 대한 공양이 여법하게 끝났음을 알리는 죽비 3타가 다시 울렸다. 불전에서 차를 내리는 퇴공의 순서뒤에 다인들이 헌공다완에서 수구에 차를 따뤄 세 번에 나눠 음다하는 순서가 이어지게 되어 있으나 이날은 우천관계로 퇴공으로 끝을 맺었다.

불전에서 차를 내려 다시 마당에 되돌아오는 것으로 불전 헌공다례가 여법히 마쳐지자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잦아 들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대적광전과 앞마당 위로 푸른 하늘이 열렸다. 개산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사바의 먹구름과 중생들의 업장을 말끔히 걷어내고자 산을 열었던 개산조들의 마음처럼 햇살이 내리고 하얀 물안개가 산허리를 타고 흐르며 신비감을 더했다.

청도의 금정다례원에서 참석한 임상점(64)거사는 “차공양을 올리고 나니 과거를 벗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기분이 든다”며 “오늘 내린 비는 중생들의 업을 씻어 내리고 맑은 마음, 참마음을 공양 올리라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날 불전 헌공다례에는 석정원(서울) 푸른차문화원(대구) 종정다례원(청도) 아란야다도회(부산) 등 전국의 차인들 중에서도 수련이 깊은 37개 다도회가 참석했다. 오래 다도를 익혀온 차인들에게도 불전에 차공양을 올리는 것은 일생에 단 한번일지도 모를 귀한 경험이다.

BC 1500년~1200년경의 고대 인도에서 유래된 ‘사원다례’는 부처님 생존시로 이어지며 참마음, 즉 초월의 상태를 차를 우리는 과정에 담아 올리는 의식으로 정착되었다. 이후 불사리탑에 차를 올리는 것이 일반화되어 곳곳의 부도전에 차공양이 올려지긴 했지만 불전에 차를 헌다하는 불전헌공다례 시연은 몇백년만에 재현된 이례적인 행사였다.

한편 다경원은 전날인 9월 30일에는 차문화강좌를 개최했다. 스님과 신도 그리고 차인 200여명등 모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교전통문화원 석정원차회 원장 선혜스님의 ‘불교사원의 차문화와 차례’, 일지암 주지 여연스님의 ‘현대생활불교와 차문화’, 동국대 김상현교수의 ‘해인사와 차문화’ 등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날 여연스님은 “오늘날 차 문화는 고급과 최고만을 따지는 사치의 전유물로 변해버렸다”며 겉모양만 호화스러운 형식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경향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오늘날, 차를 행하는 행위에 무게중심을 실어 진짜 중요한 차의 빛깔, 향, 맛을 제쳐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우리 불교역사와 문화의 전통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차문화를 막연히 현대라는 틀속에 가두지 말고 옛 시대의 발자취를 연구해,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새로운 차문화 정립에 나서자”고 말했다.

다경원(茶經院) 원장 도안스님

“해인사 강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를 좋아하는 학인들의 다도모임 ‘다경원’입니다. 오늘 헌공다례도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가야산 마애불 부처님께 다공양을 올려오던 다경원의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다경원 원장 도안스님은 다경원이 43년 전통의 해인사 강원의 수행 가풍을 세우는 중심에 있다고 소개했다. 경전공부와 수행자의 위의(威儀)를 익혀가는 강원의 학인들에게 차를 마시는 일은 곧 수행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로 비중이 높다.

1987년 12월 설립된 다경원은 <다로경권(‘茶爐經卷-차를 우려내는데 필수품인 화로인 다로와 경전의 문구를 적은 두루마리)>이라는 회지 발간을 통해 차문화 보급과 차에 관한 지식을 알리는 일에 주력해왔다. 이는 차문화 보급이 삭막한 세상에 부처님의 감로수를 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가야산 마애불 부처님께 차공양을 올리는 헌다행사를 이어온 다경원은 해인사 개산 1200주년을 맞아 2년만에 <다로경권(111호)> 을 재발간하기도 했다.

천미희 기자
mhcheon@buddhapia.com
200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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