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북한산 비봉에 올랐다. 비봉 꼭대기에 아주 오래 된 비가 있다고 해서였다. 비석 표면은 두텁게 이끼가 끼어 글자가 없는 듯했다. 추사가 손으로 문질러 보니 글자 모양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첫머리 부분의 ‘흥’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나중에 추사는 이 비를 여러 번 탁본을 해 정독한 끝에 첫 글자가 ‘진’자임을 밝혀냈다. 또 ‘태왕’ ‘도인’과 같은 단어도 찾아내 이미 고증해 냈던 황초령비와 같은 비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1천2백년 전 신라 진흥왕 때 세워진 비가 탁본과 추사의 금석학 지식에 의해 또 하나의 순수비임을 새롭게 밝혀냈다.”(<추사집> 최완수 번역)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인 금석문은 우리 고대사 연구에서 필수적이다. 부족한 문헌 사료의 빈틈을 메워주며 당시의 제도와 사회상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한국금석전문>(1984년)을 펴낸 적 있는 허흥식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는 “금석문은 한국의 고대사와 중세사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킨 소재”라고까지 평가한다.
고대 불교사 연구에서도 금석문은 거의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왕조 중심의 교훈성을 강조한 <삼국사기>나 <고려사>에는 불교 관련 기록이 간략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선사들의 행적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비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려 불교사 연구에서 금석문는 1차 사료나 마찬가지다.”(이완우 대전대 교수)
하지만 앞서 김정희의 예에서 보듯 금석문에 종이를 대고 찍어 낸 탁본이야말로 금석문 연구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탑비에 새겨진 글을 한 자 한 자 베끼면 오자(誤字)나 결자(缺字)가 생기기 쉽지만 탁본을 해 놓으면 그럴 염려가 없다. 또 아무리 읽기 어려운 금석문이라도 탁본을 해 놓고 보면 해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실물이 훼손되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의 부도비인 보각국사 탑비(보물 428호)가 벙어리 장갑 모양의 파편만 남아 있는데도 이를 통해 일연 스님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것은 옛 탁본의 사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탁본은 글씨체뿐 아니라 크기나 모양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복원시 결정적 자료로도 쓰인다.
이완우 교수는 서예사나 조각, 문양 등 미술사적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비문에 새겨지는 문장은 대개 당대의 문장가가 작성하고, 글씨 또한 당대의 명필들이 쓰다 보니 서예사 연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금석문에 새겨진 여러 가지 문양이나 조각도 예술적 향기가 높은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해서 만든 백양사의 ‘만암스님 추사집자비’나 선운사의 ‘백파대사 비문’이나 봉덕사 에밀레종의 비천상은 탁본 수집가들도 최고로 꼽는 예술품이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비문 내용에만 관심이 있었으나 장식이나 문양 등에서도 전문적인 연구 성과가 나와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탁을 떠서 일반 연구자가 열람하고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흥식 교수는 “금석문에는 현대의 깊이 있는 안목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어서, 연구자의 식견과 각도에 따라서 확대하여 이용할 길이 넓게 열려 있다”며 “금석문 연구에서 사진보다 중요한 탁본의 원본을 화상으로 입력하여 입체적으로 대조와 확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석문 탁본이 가지는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계적인 자료 집성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제 침략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금속총람>이나 허흥식 교수가 편찬한 <한국금석전문>, 지관 스님(가산문화연구원)이 펴낸 <역대고승비문> 등 금석문 자료집이 있긴 하지만 모두 활자본 형태로 나온 것들이다.
조동원 교수(성균관대)가 편찬한 <한국금석문대계>가 금석문 탁본을 축소하여 수록하고 있지만 이 역시 내용 중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 등 국내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에도 상당량의 탁본이 소장되어 있고, 한국사나 서예와 관련한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된 실정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금석문 자료 6천여 건을 영상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사업을 올해부터 10년 동안 진행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이 주축이 될 이 사업에는 탑이나 비석뿐 아니라 불상 광배의 조성기, 범종 명문과 문양, 암각화 등 금석문 자료가 총망라된다. 탁본과 사진은 물론 원문 검색까지 가능하도록 할 계힉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각 분야별로 여러 사람이 정리하거나 소장한 것을 통합해 연구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를 공유한다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며 “우선 국가지정문화재를 시작으로 비지정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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