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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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대, 제4차 결집 필사본 복원 발간
2세기경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슈카(Kanika) 왕의 후원으로 주도된 제4차 경전결집의 방대한 기록들이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출간된다.

오슬로대학에 저본이 제공된 초옌(Schoyen) 소장본 불교 경전은 2001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 의해 파괴된 바미얀 대불이 있던 곳에서 300km 북부에 위치한 해발 2000미터 산의 동굴에서 발견된 것.

바미얀 사원에서 나온‘두루마리’ 불교경전들은 주로 야자나무 잎과 자작나무 껍질, 그리고 소수의 양피지로 기록됐다. 경전의 잉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기간동안 변질되지 않았다.

제4차 결집을 주도한 카니슈카 왕은 불교를 포용했을 뿐만 아니라, 진본으로 간주되는 18부(部)의 경전을 보관했다. 중국의 여행가이자 작가인 현장 법사는 <대당서역기>에서 ‘카니슈카 왕이 설법 듣기를 너무나 좋아해서 왕궁 어디에서나 비구 스님들을 초청, 설법을 요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스님들의 가르침이 제각기 다르거나, 때론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 당황한 왕은 파르슈바 스님으로부터 바른 교리를 배우기를 청했다.

파르슈바 스님의 조언에 따라 카니슈카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암송할 결집회의를 구성했다. 다양한 부파불교의 뛰어난 고승들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초청됐다.

결집대회는 거대한 사원에서 개최되었는데, 경율론 삼장을 주석하기 위해 500여 비구 스님들이 참석했다. 경장, 율장, 논장의 주석은 각각 10만자로 구성되었다.

오슬로대 베이퍼트(Bapat) 교수는 결집대회가 사르바스티바다(Sarvastivada) 학파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스타비라바다(Sthaviravada) 학파와 기타 학파들도 교의의 일정 부분을 맡았다고 주장한다.

현장 스님에 따르면, 주석서는 후세인들에 참조하도록 청동판에 새겨져 탑속의 석장사 안에 봉안되었다.

야자잎으로 쓰여진 주석서들은 공동체가 볼 수 있도록 도서관에 봉안됐는데, 이 주석서들은 부파불교의 차이점을 없애고 비구 승단에 생명력과 단합을 가져 왔으며, 산스크리트가 경전을 서술하는 언어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브라아빅(Braarvig) 교수는 “5~6년전 아프가니스탄의 1400여년 된 도서관에 남아있던 경전들을 낙타 등에 싣고 힌두 쿠시 지역의 산을 넘어 옮긴 적이 있는데, 이 경전들은 8세기경 파괴된 사원 도서관에서 전해진 고서들이다. 이것은 ‘불교의 사해(死海) 문서’로 불려질 정도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고문서학의 방법에 따라, 우리는 이 주석서들의 연대를 1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600년 사이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 고서들은 한 파키스탄인이 주석서의 일부를 런던의 옥션 하우스(Auction House)로 가져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때, 고문서 수집가인 억만장자 마틴 초옌(Martin Choyen)이 고문서 100여 장을 구입했다. 그 파키스탄인을 만난 초옌은 당시 엄청난 거금을 들여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 온 경전 전부를 사들였다.

브라아빅 교수는 “불교 주석서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노르웨이에 올 때까지 1400여년간 완전히 분류조차 되지 않은 채 잊혀져 왔다. 거기에는 완전한 책들도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생소한 작은 필사본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브라아빅 교수는 “‘초옌 소장본 발간위원회’의 목표는 이미 잘 알려진 (중국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등) 다른 주석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필사본들을 복원하는 것”이라며,“초옌 소장본들은 역사적인 흥밋거리일 뿐만 아니라, 2000년전 야자나무 잎에 주석을 단 쓴 스님들과의 재회”라고 말했다.

<결집이란>
결집(結集)이란 불멸후 불제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의 산실을 막고 교권을 확립하기 위해 경을 외워 정리, 집성하는 것을 뜻한다. 제1회 결집은 석가의 입멸(入滅) 직후 500명의 비구들이 라쟈그리하 교외 칠엽굴(七葉窟)에 모여 마하카샤파(Mahkyapa)의 주재로 열렸다.

그 후 석가 입멸 후 100년경에 계율에 대해 이론이 생겼으므로, 바이샬리에서 야샤스(Yaas)가 주재하는 제2차 결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700명의 고승이 모였다 한다.

제3차 결집은 불멸(佛滅)후 200년경에 아소카왕 치하의 수도 파탈리푸트라에서 열렸으며, 모갈리푸타 티사(Moggaliputta Tissa)의 주재로 1,000명의 비구가 모여 경율논 삼장(三藏)을 집성했다고 한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인 자란드하르(Jarandhar)에서 이뤄진 제4차 결집은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왕(Kanika 王) 밑에서 파르슈바(Prv:脇尊者), 바수미트라(Vasumitra:世友) 등의 주재하에 이뤄졌다. 카슈미르의 비구 500명이 모여 삼장에 대한 주석을 붙였는데, 그것이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 되었다 한다.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
20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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