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무용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한국 전통춤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9월 6-7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농악판, 탈춤판, 사랑방 등 선조들의 삶 주변에서 흥겨운 '놀이'로 추었던 춤의 원형질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아울러 호방한 남성춤을 만나기 어려운 무용계 현실에 비춰볼 때도 분명 이색적인 무대다.
공연 제목은 설화 속 춤꾼 '처용'에서 따왔다. 출연자들은 공연장이나 학교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전통춤을 지켜온 명인들이다. '무용가'로 불린 적이 없지만 자신의 춤세계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남다른 사람들로, 생활터전의 주변에서 명맥을 이어온 춤의 자유로운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다.
무대에 오르는 이들은 '동래입춤'의 문장원, '고깔소고춤'의 황재기, '양산사찰학춤'의 김덕명, '진쇠춤'의 정인삼, '덧배기춤'의 이윤석, '밀양북춤'의 하용부, '채상소고춤'의 김운태, '목중춤'의 박영수 등 모두 8명.
이들 중 문장원 황재기 김덕명은 여든이 넘은 고령이다. 특히 문장원은 지팡이를 짚은 채 무대에 올라야 할 만큼 기력이 쇠했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만 오르면 신명나게 춤을 춘다는 것이 공연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번 공연은 이들 여덟 춤꾼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주목 받을 만하다. 이같은 일을 성사시킨 이가 무용평론가 겸 이번 공연 연출자인 진옥섭이다. 그는 평소 지방에 숨어 있는 예인들을 발굴해 며칠씩 그들의 집에 머무르며 이들과 친분을 다져왔고, 이번 공연 역시 이같은 신뢰에 힘입어 성사될 수 있었다.
'동래의 마지막 한량'으로 불리는 문장원(87)씨는 서서 추는 즉흥춤인 '동래입춤'을 선보인다. 26대째 부산 동래에 살아온 문씨는 15살 무렵부터 기방 출입을 시작해 부산 일대 와키, 나루도, 아라이, 봉래관, 동래관 등 일류관들을 두루 다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유 예능보유자로 이번 춤에서는 장단을 앞지르거나 뒤서는 '엇'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황재기(81)씨는 호남 우도농악의 고깔소고의 진수를 보여준다. 열일곱 살에 농악을 배우기 시작해 정읍농악단, 임방울 창극단, 우리 창극단, 국립국악원 농악부 강사, 최현 무용연구소 농악강사 등을 거쳤다. 현재는 황재기 농악연구소 원장으로 후진을 양성중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80)씨가 선보이는 양산사찰학춤은 양산 통도사에서 전승돼 왔다는 학춤이다. 선비의 평상복인 도포에 갓을 쓴 채로 먹이를 살피다 휙 낚아채는 학을 재현한다. 김씨는 한량을 넘어선 직업 춤꾼으로 양반춤.지성무춤.한량무.나례무 등 다양한 춤사위를 보유하고 있다.
정인삼(61) 민속촌 농악단장은 '진쇠춤'을 선보인다. 관아의 원님 복장으로 부정놀이.반설임.엇모리.올림채 등 다양한 장단을 밟는 춤이다. 정씨는 고모가 운영하는 양화점에서 일할 당시 양화점 밖을 지나는 국악단의 '애간장 도려내는 소리'에 춤과 음악에 뛰어들었고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수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예능보유자인 이윤석(54)씨가 보여줄 '덧배기춤'은 경상도의 자진모리 장단 이름에서 따온 마당춤으로 고성오광대놀이에 나오는 춤사위들이 즉흥적으로 엮어진다. 경남 고성의 유명한 풍류객 조용배가 이씨의 스승이다.
3대째 모갑이(놀이패의 우두머리)를 해오고 있는 하용부(47)씨는 동작이 아닌 호흡으로 추는 밀양북춤을 공연한다. 하씨는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 백중놀이 보유자이기도 하다. 또 김운태(41) 전 서울두레극장 대표는 고깔소고와 함께 소고춤의 한 종류인 '채상소고춤'을, 박영수(40)씨는 '목중춤'을 각각 춘다.
진 연출자는 "이번 공연은 그간 우리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큰 지 모르고 좁은 눈으로 바라보던 전통춤의 개념을 여는 한편, 무용계의 편식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공연에서는 음악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며 흐르는 독특한 춤사위와 굵고 거칠면서도 멋이 담긴 우리 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사 이일공과 호암아트홀이 주최하고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후원하는 행사다.
공연시간 6일 오후 7시 30분, 7일 오후 4시.7시 30분. ☎ 766-5210, 1588-7890,1588-1555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