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문헌자료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사실을 보충하기 위한 ‘2차 자료’쯤으로 취급하던 ‘증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관의 등장이후 90년대 중반부터 국내 역사학계에도 현대사 연구에서 증언을 단순한 2차 자료가 아닌 하나의 역사로 승화시키기 위한 작업이 있어왔다. 구술을 통해 씌어진 역사, 이른바 ‘구술사’다.
아직 불교계에서는 이름조차 낯선 이 구술사를 근현대 불교사 연구방법론에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우도량 한국불교근현대사연구회(회장 혜담)는 8월 20일 ‘근현대 불교사와 구술사’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선우도량이 지난 4월 발간한 불교계 최초의 구술사 자료집 <22인의 증언을 통해 본 근현대 불교사>의 평가를 겸한 이 자리에는 구술사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윤택림 박사(미래인력연구원, 인류학)와 이선형(서울대 박사과정)씨, 김광식 대각사상연구원 연구부장이 발제를 맡았으며, 연구회 회원인 성전 스님과 철오 스님, 동출 스님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의 관심은 과연 근현대 불교사 연구에서 구술사가 유효한가에 모아졌다. 일반 역사학계에서 구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문헌자료를 남기지 못한 민중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에 기록된 이면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 보자는 취지에서다. 반면 10년 남짓의 역사를 갖고 있는 근현대 불교사 연구에서는 아직 문헌자료의 정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연구자도 5∼6명에 불과하다.
정사(正史)로 삼을 ‘교과서’조차 없는데도 구술사가 유효한가란 물음에 대해 철오 스님은 “정리된 정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구술사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출 스님은 “<22인의 증언…>에서 담은 종단 정화사만 보더라도 정화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미진할 뿐더러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다”며 “당시 생존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더 절실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전 스님은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하는 화두를 던졌다. 구술이 과거에 개인이 경험한 일에 대한 현재의 기억이다 보니 과거를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다양한 기억의 편린들이 오히려 올바른 역사 인식에 혼란을 줄 위험은 없겠느냐는 것이다.
김광식 박사는 “자료 축적의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학문적 연구의 자료로 삼기 위해서는 씨줄, 날줄로 엮인 각종 회고나 증언의 비교 등을 통해 학문적 검증과 검토를 거친 객관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 박사는 “그간 불교계는 각종 회고와 증언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도 학문적 작업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지금껏 근현대 불교사에서는 문헌적 근거를 갖고 나타난 역사와 구술에 의한 역사가 서로 섞여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신화적 ‘입소문’의 요인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4월 발간된 <22인의 증언…>에 대한 평가에서 동출 스님은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대상 선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택림 박사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린 상태에서 그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는 질문들이 많아 구술자를 통제하고 있다”고 했고, 이선형 씨는 “구술자가 아니라 주변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묻는 방식이 많아 구술자가 정보제공자의 위치로 하락하는 듯하다”며 “‘묻기’보다 ‘듣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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