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의 부처님께 향을 피워 공양할 때 쓰는 향로는 필수적인 공양구 가운데 하나다. 특히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특이한 형태의 향로를 향완(香碗)이라 하는데,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해 조선시대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사찰에서 공양구로 사용됐다. 고려시대 금속제 향완은 은입사 장식이 표면에 새겨져 있어 뛰어난 금속공예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향완은 어디에서 그 형태가 기원한 것일까? 아쉽게도 삼국시대 토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만 추정할 뿐 구체적 논의가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경미(서울대 강사)씨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펴낸 <미술자료 68집>에 기고한 논문 ‘고려시대 향완의 기원’에서 “고려시대 향완의 형식적 기원은 중국 당나라 말기 오대 시기에 사용되던 불교 의례용 향로”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주 씨는 고려시대 향완의 형태에 대한 기존 학설이 한반도에서 출토되거나 전래된 유물만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현존하는 8세기 이후의 중국 향로와의 비교를 시도했다.
현존 유물은 아니지만 둔황 막고굴 벽화에 표현된 불교 의례용 향로의 형태 변화와 불교조각이나 기와에 표현된 통일신라 향완까지도 비교 대상에 넣었다.
그 결과 주 씨는 “기본적인 형태는 토기에서 발달했지만 실질적인 향완으로의 발전은 중국 당나라 말기 오대 시기에 사용되던 불교 의례용 향로의 영향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당대 향로에서 보이는 다단형 기대와 주발형 몸체 등의 형태가 통일신라 말기부터 한국에 전해졌으며, 10세기 이후 4단계의 토착화 과정을 거친 후 12세기 중반 무렵 현존하는 형완과 같은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향완의 표면에 각종 문양을 새겨 넣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주 씨의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 향완이나 향로 연구에 있어 공백기로 남아 있던 9∼12세기를 메웠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다. 현존하는 향완의 대부분이 12세기 이후 제작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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