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국사기>와 더불어 우리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문헌자료인 <삼국유사>의 판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돼 지정 예고된 가운데, <삼국유사>의 찬술과 판각 시기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재조명해 보는 학술 대회가 열렸다.
경북 군위 인각사(주지 상인)와 일연학연구원(이사장 법타)은 8월 14일 ‘<삼국유사>의 찬술과 판각’이란 주제로 제2회 일연보각국사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삼국유사> 판각의 시기와 장소’ 주제 발표를 맡았던 천혜봉 전 성균관대 교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 된 판본으로 조선 초기에 판각한 <삼국유사 권 3∼5>(보물 419호, 개인 소장)와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 범어사 소장본은 판각용 필서본을 마련해 최초로 개판한 초각판의 성격과 특징이 뚜렷하다”며 “<삼국유사>가 최초로 판각된 시기는 조선 초기이며 조선 태조 3년(1392)”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삼국유사>의 최초 판각 시기에 대해서는 육당 최남선이 일연 생존시 판각설을 주장한 이래 일연의 제자 무극 생존시 판각설 등의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어느 주장이나 현존하는 최고(最古) 판본인 조선 초기 판본은 고려시대 초각본을 바탕으로 중각(重刻)한 것이거나 3각(三刻)한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최초 판각 시기를 고려시대로 잡고 있다.
하지만 조선 초기 판본인 이들 세 판본에 판각된 글자체와 새긴 기법을 고려 이래의 전통적 판각기법에 기초해 살펴본 천 교수는 이들 판본이 고려시대 판각본을 다시 번각한 것이 아니라 새로 최초로 간행한 초각판임을 밝혀냈다.
번각판이라면 5권이 모두 남아 있어 현재 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용하고 있는 조선 중종때 판각된 정덕본처럼 글자획이 굵었다 가늘었다 가지런하지 못하고, 글자획을 잘못 새겨 끊기거나 부분적으로 잃은 것이 나타나거나 글자체가 일그러진 것이 자주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조선 초기 판각본은 글자 모양이 바르고 새김이 정교해 글자획이 가지런하고, 마치 필사한 것처럼 필력이 예리하여 초각 판본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조선 초기 판본이 중각본이라면 3번째 판각본에 해당하는 중종 때 판본에는 고려시대 초각본과 중각본, 3각본의 특징이 함께 섞여 있어야 하는데, 중종 때 판각본에는 조선 초기 판본과 중종 때 판본의 특징만 나타나 있다는 것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천 교수는 “현존하는 <삼국유사> 조선 초기 판본은, 고려 후기까지 필사본 형태로 유통되던 것을 <삼국사기>를 다시 판각한 조선 태조 3년(1394년) 4월을 전후한 무렵 경주부에서 판각한 초각판이며 그것이 중종 때 판본의 바탕이 된 원각판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토론자로 나선 김상현 교수(동국대)는 “조선 초기 이후에 인용된 예에 비해 고려 후기 전적에 <삼국유사>가 인용된 예가 매우 희소하다는 점도 조선 초기 판각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면서도 “각주에 보이는 ‘고본(古本)’ ‘일본(一本)’ ‘별본(別本)’ 등의 용어를 책(필사본)으로 해석하느냐 판본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도 최초 판각 시기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각주에 대해서도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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