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2천4백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다.
과연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답게 2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영화에 흠씬 빠져들게 만든다. 평범한 10살짜리 소녀 치히로가 엄마 아빠와 함께 이사를 가는 길에 겪는 환타지 모험담이다.
불자의 눈으로는 영화 곳곳에서 불교적인 가르침도 캐치할 수 있다. 온천장 주인 ‘유바바’라는 마녀가 사람들을 평생 수하에서 부려먹을 수 있는 것은 고용할 때 새 이름을 주고 본명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천장의 지배인 ‘하쿠’는 ‘센’이 된 ‘치히로’에게 본명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며 늘 본명을 잊지말라고 한다. 마치 무명에 가려져 본성을 잊고사는 우리들에게 본성(불성)을 잃지 말고 찾으면 해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상징적인 가르침처럼 느껴진다.
또 온천장의 불청객 ‘가오나시’라는 귀신은 무엇이든 꿀꺽꿀꺽 삼킨다. 몸은 점점 비대해지지만 먹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가오나시가 만들어내는 황금과 탐식은 온천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끊임없이 삼키지만 항상 배고파하는 가오나시는 그러나 늘 외로운 모습이다. 자꾸 부자가 되려고 하고 욕심이 끝이 없지만 마음속은 늘 허전하고 비어있는 현대인들의 황금만능주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영화 곳곳에서 불교적 가르침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불교계는 왜 이렇게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면서도 작품성도 인정받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갖지 못하나 아쉬움이 들었다. 불교라는 창고에는 이러한 작품을 얼마든지 만들 무궁무진한 재료가 쌓여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라는 21세기에도 불교계는 불상, 탑, 종 등 하드웨어적 불사에 여전히 주력하고 있다. 굳이 불교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부처님가르침을 어떻게 하면 쉽게, 그리고 정서적 공감대와 감동을 주면서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불교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도 ‘어렵다, 고루하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할머니들 만이 믿는 종교’ 등등을 연상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전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센과 치히로...’를 보니 우리 불교가, <법화경> 비유처럼 친구가 옷속에 보배를 넣어놓았음에도 자신에게 귀한 보배가 있는 줄을 몰라 예전처럼 어렵게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과 같은 처지라 더욱 안타까웠다.
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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