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식은 결코 둘이 아니다.
얼핏 선사의 법문처럼 들린다. 하지만 선사의 말이 아니다. 한 화가가 그림과 조각으로 ‘보여준(?)’ 말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대 교수로 뉴욕과 워싱턴의 화단에서 인정받고 있는 화가 문범강 교수(47). 그는 자신의 그림들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지난 8일부터 8월11일까지 서울 세종로 네거리 일민미술관(동아일보사 구 광화문사옥)에서 자신의 겉과 속을 때론 은유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 ‘BG MUN-I LOVE YOU'에서는 회화 40점과 조각 작품 11점을 내놓았다. 특히 조각 작품은 문 교수의 변신을 보여준 증거물들이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자화상’이다. 머리를 떼어내 두 손을 받쳐놓고 ‘몸’이 내려다 보고 있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시각적인 혼란과 섬뜩함마저 느껴지지만, 그의 설명을 들으면 이내 복잡했던 머릿속은 깨끗이 정리 된다. 문 교수는 “이 작품은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집요하게 묻는 일종의 화두 참구 모습을 표현했다”며 “면벽 좌선한 상태에서 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감싸고 있는 덩어리인 두뇌를 보며 의식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캐묻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 조각 작품들도 문 교수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아이디어가 나타나 있어 다채롭고 재미있다. 재료도 철망, 헝겊, 한지, 흙 등 다양하다.
특히 전시중인 ‘은밀한 노출’은 머리가 절단된 물고기의 뱃속에 어란(魚卵)대신 아기 인형들이 들어 있다. 마치 물고기가 사람을 임신하고 있는 형국이다. 동물과 물고기 사람 등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각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서 물고기도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인간과 같을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불자들이라면 당연히 고개를 갸우뚱거릴 작품도 있다. '부처와 그의 네 명의 아내’. 위쪽에는 면벽 좌선을 하는 부처님이 아래에는 네 명의 여자들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에게 왠 네명의 부인?. 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보이는 세계 너머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 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참자아를 찾기 위한 면벽 좌선을 통해 깨침을 얻으면 속세의 잣대로 보는 경계를 넘어 부인의 숫자는 하나든 열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80년 미국 메릴랜드 대학원에서 뒤늦게 미술공부를 시작한 문 교수의 작품 곳곳에 이렇듯 불교 사상이 녹아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마음선원 대행스님을 친견하면서부터다. 당시 한국에 있던 누나와 형 등의 권유로 85년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대행 스님 법회에 참석하고 난 뒤 문 교수의 마음속에는 무엇엔가 크게 얻어 맞은 듯한 큰 감동이 일었다. 그 뒤부터 대행스님의 법문과 책들을 구입해 탐독하기 시작했다.
또 문 교수는 조지타운대내에 ‘명상클럽’ 교실도 만들어 학기중에 미국 학생들에게 참선도 지키는 등 포교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다.
그의 강의실에는 늘 에너지가 충만하다. ‘의식의 진화’에 관한 개안(開眼)만으로도 눈 파란 서구의 학생들에겐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중에도 20 ? 27일 오후 7시 일민미술관 강의실에서 ‘현대미술에 나타난 섹스와 죽음’을 주제로 강의를 마련한다. (02)2020-2055
김주일 기자
jikim@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