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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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결집대회 결산
“국내에서 활동하는 불교학 전공자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

불교학 관련 학술대회로는 최대 규모였던 한국불교학결집대회(이하 결집대회)가 5월 5일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을 차기 대회장으로, 해주 스님(불교학연구회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이틀간의 일정을 마쳤다.

결집대회는 다른 인문학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대회라는 점에서, 개최 전부터 이미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었다.

이틀동안 11개 분과로 나눠 5개 불교계 종립대학과 14개 학회, 10개 연구소·연구원에 소속된 학자 180여 명이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불교사를 비롯해 인도불교, 중국불교, 불교어문학, 불교문화예술 등 불교와 관련된 거의 전 분야의 주제를 다뤘다.

이번 결집대회에 대해 참가자들은 대체로 “한국 불교학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불교학계에서는 현재 불교학과 관련해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400∼500명 선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불교학 관련 학술 단체도 30여 개가 넘을 정도로, 불교학계는 90년대 이후 양적으로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점검할 수 있는 장(場)이 없었다. 결집대회는 바로 각자의 연구 성과를 공개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마련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에 대해 정기문 교수(강원대)는 “자꾸 만나서 발표하고 서로 토론하다 보면 이것이 불교학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병욱(고려대 강사) 씨는 “약간의 미비점들도 보이지만 이런 문제는 이후 지속적으로 대회를 열어 나가면 조금씩 보완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덕진(고려대 강사) 씨는 “불교학자간 교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못지 않게 응용불교나 불교어문학, 불교문화예술 분야 등에서 학제간 연구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의 질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학술대회의 질은 얼마나 새롭고 수준 높은 논문이 많이 발표되느냐에 달렸다고 했을 때, “몇몇 눈에 띄는 논문도 있지만 전체적 수준은 그렇게 높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김상현 교수(동국대)는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주제 자체를 좁혀야 하는데, 너무 포괄적으로 주제를 잡아 총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자료 발굴이나 해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성두(충북대 강사) 씨는 “결집대회 발표 논문이 학술적 업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른 학술지에 다시 발표할 수 있을 만한 논문을 발표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송인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조교수는 “준비 기간이 얼마 안 돼 촉박하게 쓰여진 논문도 보였던 것 같다”며 “일본의 인도학불교학회처럼 사전 심사를 거쳐 논문 발표자를 정한 후 대회 때는 요지만 발표하고, 이후 이를 수정 보완해 논집을 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기 대회장을 맡은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은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고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를 언급한 논문들도 보인다. 하지만, 결집대회가 (불교학 발전에) 질적으로 얼마나 공헌했는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평가가 나올 것 같다. 이후 논문이나 자료집에서 결집대회 논문들이 얼마나 인용되고 참고되는지 지켜보면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통계로 본 발표 논문】한국불교 관련 논문 전체 46% 차지

인물은 원효, 분야는 禪·화엄·유식 / 일본불교 논문 단 2편

한국불교학결집대회에서는 어떤 주제의 논문들이 발표됐으며 논문이 가장 많이 몰렸던 분야는 어떤 분야일까?

결집대회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불교학 및 관련 연구자 가운데 거의 절반이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현재 한국 불교학계의 연구자 분포 현황과 연구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발표한 학자는 180여 명에 이르지만 기간 내 논문을 제출해 <한국불교학결집대회 논집>에 실린 논문은 모두 145편이다. 이 145편을 대상으로 연구 주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논문이 발표된 분야는 학제간 연구 분야(50편)다.

학제간 연구나 응용불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를 엿볼 수 있다. 양적으론 활발했던 반면, 총론 성격에 그쳤다는 평가가 많아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다.

교학적 측면에서는 선(禪) 관련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17편). 그 뒤를 화엄(14편), 유식(11편), 초기불교(9편), 천태(7편), 밀교(6편), 중관(5편), 계율(2편), 아비달마(1편)가 이었다. 정토 등 기타 분야가 23편이었다. 한국 불교학계의 관심이 선이나 화엄, 유식 분야에 집중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초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요 몇 년 새 늘어난 것을 결집대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논집>에 수록된 145편 가운데 지역별로 나눌 수 있는 107편의 분석 결과는 한국 불교학계가 한국과 중국, 인도 3국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49편이 한국 불교에 대한 논문이었고, 인도(32편), 중국(23편)이 다음으로 많았다. 일본불교에 대한 논문은 단 2편에 그쳐, 일본으로 유학은 많이 가면서도 막상 일본 불교 전문가는 없는 현실을 실감나게 한다.

한국 불교에 대한 논문을 시대별, 인물별로 나눠 보면 신라불교와 원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49편 중 시대별 구분이 가능한 40편을 보면 신라불교에 대한 논문이 17편을 차지했고, 근현대(9편) 고려(8편), 조선(6편) 순이었다. 인물과 관련된 논문 30편에서도 원효 관련 논문 12편인 데 비해 보조 지눌(4편)이나 한용운(3편) 초의(2편) 휴정(2편) 등에 관한 논문은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숫자였다.

【결집대회 이모저모】

올해가 마지막 아닐까?

결집대회 개최 전까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격년제로 열기로 한 대회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결집대회에 참가한 29개 단체 협의회는 5일 오후 3시 회의를 갖고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을 차기 대회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조직위원회는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썰렁하지 않을까?

둘쨋날 참가 인원이 적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도 기우였다. 첫날에 이어 둘쨋날에도 발표자 외에도 스님, 대학원생, 일반인들이 참여해 비교적 활발한 토론이 오갔다. 이들은 자기 관심 분야에 따라 한 발표가 끝나면 다른 분과 발표장으로 이동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 특히 초기불교 발표가 있었던 7분과에는 대회 마지막까지 20여 명이 몰려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음을 간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응용불교를 다룬 11분과에서는 불교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을 놓고, 발표자와 토론자, 참여자들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가기도 했다. 대학원에서 초기불교를 전공하는 한 학생은 “발표와 토론을 들으며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기계적인 분과 배정

분과 배치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애초 20개 분야로 나눠 논문을 접수했으나 특정 분야에 신청자가 몰리다 보니 20명을 기준으로 분과를 재조정해야 했다. 분과당 발표 인원을 맞추느라 자기 분과가 아닌 다른 분과에서 발표하는 사례가 몇몇 눈에 띠었다.

예를 들어 응용불교 분과에서 발표해야 할 논문이 다른 분과로 간다거나, 밀교가 신라·고려 분과에도 포함되는 등의 경우다. “너무 동류항끼리 묶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활발한 토론과 의견 교환을 위해서는 최대한 같은 분과로 묶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잘못된 글쓰기=부실한 논문

결집대회를 참관하러 온 한 재야학자는 논문의 ‘질’과 관련 논문 ‘쓰기’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 학자는 “논문의 내용이 우수하냐 떨어지느냐를 떠나 글쓰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논문이 너무 많다”며 “특히 한자 용어를 남발한 논문을 볼 때면, 과연 논문을 쓴 사람이 용어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학술적인 글은 주장이나 논거가 투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한국의 불교학 관련 논문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주제가 투명하지 못한 글은 비판이나 검증을 위한 잣대 역시 불분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교학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과 질의 조화는…

앞으로도 계속 우수한 논문이 생산될까 하는 문제는 숙제로 남겨졌다. 이에 대해 차기 대회장 종범 스님은 “이런 판단을 연구자 개인에게만 맡겨 둬야 하는지는 차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의할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불교학자 층이 그렇게 두껍지 않은 현실에서 심사를 강화할 경우 숫자가 줄어들어 대회의 지속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
200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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