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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봉업사 고려 광종 개혁의 중심지
고려 태조 왕건의 진영을 봉안한 진전사원(眞殿寺院)이었던 경기도 안성 봉업사는 광종이 왕권강화와 중앙집권화를 통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중건한, 경기 지역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지난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2차례에 걸쳐 절터 6000여 평을 발굴 조사한 경기도박물관(관장 양미을)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통일신라시대 목탑터 등 건물터 28곳, 통일신라∼고려에 이르는 막새기와 220여 점, 고려 광종대의 독자적인 연호인 ‘준풍(峻豊)’ ‘건덕(乾德)’ 등이 새겨진 명문기와 40여 종 500여 점, 청자, 중국 자기 등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문자가 새겨진 명문기와 454점은 우리 나라에서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이며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신 진전의 위치를 사역의 중심인 오층석탑 북서쪽에서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봉업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화차사(華次寺)로 개창됐다 고려시대 들어 봉업사로 중창됐으며, 고려 제국의 기반을 다진 광종의 개혁을 뒷받침했던 중심지”라고 결론 내렸다.

1·2차 발굴을 통해 특히 관심을 끈 것은 평지가람으로서 중서부 지역 최대 거찰인 봉업사가 언제 이만한 규모를 갖췄냐는 것이었다. 박물관 측은 간지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광종대에 집중돼 있으며 사찰 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 광종이 중국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연호인 준풍, 건덕 등이 새겨진 기와가 연호명 명문기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점, 4년 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연호인 ‘준풍’명 기와가 출토된 점 등에 주목했다.

백종오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원래 화차사란 절이 있다가 광종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고 주위 호족들을 왕권 아래 규합하기 시작하면서 중심지인 석탑에서 반경 500m 규모의, 대규모 절(봉업사)로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며 “진전사원의 면모를 갖춘 것도 이 시기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
200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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