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는 단순한 식기(食器)가 아닌 출가 수행자의 무소유와 무욕을 상징하는 법기(法器)다. 선서화(禪書畵) 또한 수행의 기운이 없으면 한낱 기교적 작품에 그치기 쉽다. 그래서 작가가 붓끝을 움직여갈 때 무심(無心)의 상태가 아니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없다.
깨달음의 향훈과 무욕의 삶을 느끼게 하는 국내외 선지식들의 작품 전시회가 4월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백령도 연화도량이 ‘2002 세계 고승대덕 발우ㆍ선서화 특별전’을 주제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조계종 역대 종정을 비롯해 원로 스님들의 서화, 글씨, 도자기 등 250여점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베트남, 티베트, 캄보디아 등에서 수집한 해외 선지식들의 발우 50점이 함께 전시된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경봉, 청담, 석주, 만봉, 성철, 서옹, 석정, 중광, 수안 스님 등 법명만 들어도 얼굴이 머릿속에 단번에 그려지는 고승들부터 동승의 작가 원성스님까지 근ㆍ현대 선서화가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선서화의 전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최순택 교수(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는 “선적 미감의 실체는 주체가 되든 객체(감상자)가 되든 결국은 수행의 깊이에서 오는 느낌의 공감에서 지각된다”며 “오래 참선 수행한 사람의 선묵에서는 고담청냉(古談淸冷)한 정취와 보는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히고 정화시키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선서화 감상법을 설명한다.
이외에도 석주스님이 40년간 사용한 은행나무 발우를 비롯해 티베트의 달라이라마와 링 린포체, 베트남의 민짜우, 스리랑카의 에티폴라 메단카라, 캄보디아의 탭봉, 미얀마의 비단타 자나카 등 고승들의 발우도 눈여겨 볼만한 전시물이다. 또 인간문화재들이 나무와 철, 도자기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발우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지명 스님(백령도 연화도량 주지)은 “3년전부터 선서화를 수집하며 국내는 물론 세계 고승대덕들의 사상, 예술정신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싶었다”며 “특히 세계의 큰 스님들이 남긴 발우와의 만남을 통해 물질적 가치에 함몰되기 쉬운 현대인의 병폐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한편 26일부터는 부산 국제신문 문화센터 4층 대전시실에서 2차 순회전시를 갖는다. (032)885-9711
김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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