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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 부도는 낭공대사 사리탑
지금까지 그 주인공이 밝혀지지 않은 보물 369호 석남사 부도가 낭공대사 행적(832∼916)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재구 학예연구관은 최근 나온 <울산 연구>(울산대 박물관) 3집에 기고한 논문 ‘신라하대 울산지역의 승탑(僧塔)’에서 “낭공대사 탑비는 954년(고려 광종 5) 봉화의 태자사에 세워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나 승탑의 존재는 묘연하다”며 “현재 경남 언양에 남아 있는 승탑(석남사 부도)이 낭공대사 행적의 승탑”이라고 주장했다.

석남사 부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석남사를 세운 도의국사의 사리탑이라는 설과 보조선사의 사리탑이라는 일설이 있으나 관련 기록이 없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었다.

소 연구관이 석남사 부도를 낭공대사 행적의 승탑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석남사 부도의 양식이 낭공대사 탑비가 조성된 954년과 비슷한 시기인 10세기 양식이라는 점이다. 석남사 부도는 880년 무렵 세워진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창성탑(보물 157호)의 양식을 계승했지만 시기는 훨씬 후대인 10세기 양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 탑보다 규모가 크면서도 보조선사탑보다는 규모가 축소된 점, 기단 폭이 좁아지고 상륜부가 강조된 점에서 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남아 있는 낭공대사 탑비의 비문에 낭공대사가 입적했다고 전하는 석남산사의 주변 형세가 기록되어 있는데, 석남사 부도가 있는 울산 언양의 가지산 석남사의 주변 형세와 일치한다는 점도 한 이유다. <동국여지승람>를 보면 언양현조에 석남산이 소개돼 있지만 태자사와 낭공대사의 비가 있던 봉화현에는 석남산이란 지명이 없다.

소 연구관은 “낭공대사가 916년 입적한 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탑비가 세워졌음을 볼 때 석남사 부도는 낭공대사 행적의 승탑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buddhapia.com
200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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