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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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은 석굴암
문화재청은 최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재의 석굴암으로부터 동남쪽으로 1백m 떨어진 곳에 '석굴암 역사유물관'을 5월쯤 착공할 예정이다.

지상 1층, 지하 1층에 실물크기의 석굴암 모형과 영상실 등이 들어 설 것이다. 총예산은 52억원. 제작기간과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모형은 화강암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라고.

*** 신성 모독.환경 훼손 우려

순간 아연실색했다. 이런 발상과 계획이 어떻게 하여 이루어졌을까.

석굴암은 토함산의 동남쪽으로 난 계곡 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석굴암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유현(幽玄)한 계곡이 길게 뻗쳐 있는 형국이다.

계곡의 물은 바로 석굴암 자리가 근원지인 듯 한 인상이다. 실제로 원래 석굴암 주실(主室) 밑바닥에서 샘물이 콸콸 솟았었다.

바로 석굴암 본존으로부터 불과 1백m 거리인 코앞에 흉물이 될 것이 뻔한 건축과 조각의 실물 모형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실로 석굴암의 또 한차례의 역사적 최대위기이다.

화강암 이외에 어떤 재질로 만들건 어떤 기술로 만들 건 석굴암을 결코 재현할 수 없으며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더 나아가 석굴암에 대한 신성(神性)모독이 될 뿐이다.

또 주변 환경을 가급적 해치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그것은 말뿐이고 실제로 그 주변의 자연환경은 무참하게 훼손될 것이다.

빼곡한 소나무들이 벌목될 것이고 마침내 계곡은 메꾸어 지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몰려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석굴암의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어느 때나 오욕의 시대였다. 그러나 종교는 늘 이 오욕의 땅을 깨침을 통하여 극락, 법계, 천국 등의 이름으로 정화(淨化)하려했다.

내가 평생 연구해 오고 있는 석굴암이 가리키는 바가 바로 깨침이오, 그 깨침을 통하여 오욕의 땅을 정화한다는 위대한 메시지를 온 인류에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석굴암을 젊은 시절부터 보아왔지만 오랫동안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부터 너무 높이 너무 멀리 있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인도의 불교미술을 시대 순으로 연구하면서 비로소 석굴암은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듯 했다.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였던 것은 이 석굴암이 인류가 이루어 놓은 모든 예술품보다 한 차원 높은 것임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성숙해지지 않으면 석굴암의 세계에 결코 접근하지 못할 것이었다. 석굴암 연구는 40대 중반에 비로소 착수하게 되었다.

인간이 부처가 되는 깨침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깨달음을 체험하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간다.

그러나 불교의 깨침이란 더 이상 완전할 수 없는 최상의 경지인데 아마도 어느 인간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무상정등각을 예술품으로 나타내려면, 말 그대로 무상(無上)의 예술품을 창조해서 그 절대의 정신을 표현해야한다고 신라인들은 깨달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석굴암을 미증유의 예술품으로 완수함으로써 궁국의 진리를 실현하려는 야심을 지녔던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은 그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다.

석굴암은 비밀스런 장소에 지어졌다. 함께 지어진 불국사(佛國寺)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널리 드러나는 자리에 세워졌지만, 석굴암은 깊은 계곡 후미진 곳에 감추어져 있다.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또 하나의 진리의 태양은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다. 여래장(如來藏)처럼.

그렇기에 몽고란, 임진왜란, 불교박해 등 온갖 시련을 거치면서도 기적처럼 석굴암은 그나마 온존한 모습을 그런 대로 유지해 온 것이다.

*** 보수공사 마무리가 우선

그러한 석굴암의 그러한 자리에, 석굴암이 발산하는 영혼의 빛을 무자비하게 어지럽히는 엄청난 모형과 자료관이 계획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교육적 목적이라면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다른 방법으로 적당한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예산이나 기한에 얽매이지 말고 훌륭한 모형을 만들면 먼 훗날 그것도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내놓을 가장 위대한 예술품은 석굴암의 건축과 조각, 그리고 거기에 깃 든 숭고한 정신이 아닌가.

석굴암 자체도 잘못된 보수공사로 그 영기(靈氣)를 잃고 있는데, 그 주변 환경마저 무자비하게 훼손할 것인가.

어느 시인의 침묵의 절규처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姜友邦(이화여대 초빙교수)

중앙일보 <시론>
20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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