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미술관에 갔다. 무슨 그림을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엄마는 감상문을 쓰라고 하신다. 무얼 쓰지? 미술관은 정말 따분한 곳이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미술관에 갔지만 혹시 아이들이 일기장에 이렇게 쓰지는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오광수) 어린이 미술관은 겨울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작품을 보고 만들기도 하는 ‘우리가족 미술여행’을 열어 놓았다. 1월 한 달간 매주 목요일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100 가족 모집에 450여 가족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1월 3일. 오전 10시부터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다섯 가족이 한 조가 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담당 선생님과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어린이 미술관에 전시된 또래들의 그림과 화가들의 작품을 본다. 백남준의 ‘선’, 앤디 와홀의 ‘자화상’을 앞에 두고는 엄마 아빠들의 질문이 더 많다. 사실화부터 반구상화,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그림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듣지만 정작 아이들은 작품을 보고도 알쏭달쏭한 얼굴이다. 그래도 정점식씨의 ‘바위와의 대화’란 추상화를 보고는 “저건 바위그림이야”라고 단번에 맞춘다. 한 시간 가까이 전시실을 돌아보는 일이 계속 되자 드디어 아이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엄마, 그림은 언제 그려요?”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다시 어린이 미술관에 모였다. 오늘은 배추와 연근, 털실과 색모래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꼴라주 기법의 판화를 찍는다. 아이들이 정한 주제도 ‘숲 속의 아파트’, ‘사탕나라’, ‘해저도시’ 등 다양하고도 기발하다. 지윤이(과천 관문초등 1)는 매일 힘들게 청소하는 엄마를 위해 ‘청소하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에 풀이 묻고 색모래가 날려도 마냥 재미있고, 깻잎이나 은박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어린이 박물관 강사 박준수씨는 “재료를 보고 만지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개발되므로 아이들이 하는 대로 그냥 둘 것”을 권한다.
부지런히 재료를 오리고 붙이는 아이들 곁에는 아이의 작품을 넣을 액자를 만드는 엄마들의 솜씨자랑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색모래와 셀로판지가 신기하기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딸아이의 액자를 만들던 이주연(37)씨는 “그동안 미술관에 자주 왔지만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하기는 처음”이라며 “미술관도 재미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아이보다 더 좋아했다.
여수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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