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시사회의 관례대로 감독과 배우들의 인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입을 맞췄을 테지만, 잘 훈련된 군인 이상으로 그들은 일사분란했다.
“…재미있게 봐 주십시오(감독).” “…즐기십시오(배우 박신양).”
10명도 넘는 출연진들의 ‘재미있게 봐 달라’는 인사는 계속됐다. 간간이 ‘행복하게’ 또는 ‘즐겁게’ 보라는 말도 있었지만 키워드는 ‘재미’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영화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일까?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다른 모든 문제를 상쇄시킬 만큼일까?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 두 가지 이유에서 긴장을 했었다. 첫째, 잘 만든 ‘한국 영화’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고 둘째, ‘종교와 표현의 자유’가 갈등을 빚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둘 다 큰 문제는 없었다. 깡패 영화치고는 영상도 좋았고, 스님 연기도 비교적 좋았다. 종교와 표현의 갈등 문제도 ‘교묘히’ 피해간다. 자, 그렇다면 이제 즐기는 일만 남은 셈인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오프닝 신은 폭력이 난무한다. 나이트클럽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지는,야구 방망이가 춤을 추는 조폭들의 패싸움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친구>, <신라의 밤>, <조폭 마누라>로 이어지는 깡패 영화의 어법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패싸움에서 밀린 한 무리의 깡패[재규(박신양)일당]들은 칼맞은 조직원 한명을 병원에 밀어넣고는 산사로 숨어든다. 영화 속 대사처럼, “막말로 머리나 깎고 중이나 되면 모를까” 어디로도 갈 곳 없는 깡패들이 “인생 종치는…” 심정으로.
실제로 영화도 범종 소리와 함께 장면을 바꾸며 깡패들과 스님들의 대결을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결이라는 것이 ‘시추에이션 코믹’이자 ‘휴먼 코믹’이라는 얘기다.
먼저 시추에이션 다섯, <삼천배>, <고스톱(화투)>, <물 속에서 오래 버티기>, <369임> 그리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떠나느냐 남는냐’를 놓고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결과는 깡패들의 승리. 마지막 승부였던 ‘밑 빠진 독…’ 화두(?)를 깡패들이 타파(?)한 것이다.
여기까지도 큰 문제는 없다. 스님을 ‘희화(戱畵)’한 점보다는 웃음의 미덕이 더 크고, 깡패들의 화두 타파가 스님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사이의 몇몇 에피소드는 아슬아슬하다.
그 중 하나. 깡패들이 법당 청소를 하다가 부처님의 국적이 ‘인도’냐 ‘중국’이냐를 놓고 다투다가는 부처님을 들어 올리고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외칠 때, 관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씁쓸한 기분을 차마 떨칠 수 없었다.
이걸 두고 훼불이라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다분히 ‘블랙 코미디’적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그 의도를 분명히 하지 않은 저의는 의심스럽다.
무조건 웃기기 위해서라고? 그러면서도 감독은 노스님(김인문)의 관용과 포용력을 부각시킴으로서 아주 효과적으로 ‘친불교적’ 이미지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재규 일당을 박살내러 온 깡패들과 그들보다한술 더 뜨는 스님들이 벌이는 마지막 폭력 장면이다.
상투적 폭력 장면도 문제지만, 깡패 의리에 깡패보다 더 충실한 스님들의 폭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친해진, 배신을 당한 깡패들을 폭력으로 돕는 것이 진정 ‘휴먼’일까? 그리고 마지막, 깡패짓 해서 번 돈으로 사 보냈을 것이 분명할 선물들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스님들의 모습 또한 ‘휴먼’일까? 그렇다면 이 영화도 결국, ‘상업’이라는 종교의 ‘흥행’이라는 계명에만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인가?
오락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본 게 아니냐고 하면 할말 없다. 더 이상은 관객 몫이니까. 11월 9일부터 전국 150개관에서 개봉된다.
윤제학
yunjh@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