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조각 하나, 나무토막 한개라도 애인처럼 소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10월 31일 국내 최고(最古)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 작업 시연회에서 탑에 첫 손을 대 눈길을 모은 '드잡이' 홍정수(洪正洙.62.경기도 고양시 주교동)씨.
洪씨는 이날 전통 백제의상을 입고 나온 여덟명의 동료들과 함께 1천4백여년된 석탑의 최상층에 있는 1t짜리 옥개석(屋蓋石)을 해체한 뒤 들어옮기는 시범을 보였다. 그는 "아무리 작은 것도 허투루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작업시간 내내 긴장을 풀지 않았다.
洪씨는 문화재 기능자 1백90호로 43년째 드잡이다. 드잡이란 거중기.도르래.통나무 등을 이용해 5t.10t씩 되는 육중한 돌이나 기둥을 옮기고 들어서 맞추는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기술자. 집을 통째로 들어 옮기기도 하고 밀어서 비틀린 것을 맞추기도 하는 드잡이는 국내에 10여명이 있다.
"내가 스물한살 때 당대 최고의 드잡이였던 매형의 권유로 입문했습니다. '단 하나의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며 매몰차게 가르친 매형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洪씨는 그동안 남대문 해체 복원을 비롯해 금마 왕궁탑.월정사 9층탑.불국사.수원성곽.경복궁 근정전.화엄사 석탑 등 내로라하는 문화재의 보수공사에 참여했다.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드잡이 수입이 너무 빠듯해 한때 전직을 고려했다. 그러나 학자.전문가들이 "당신 손에 우리 문화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격려해줘 천직으로 알고 버텨왔다.
洪씨는 "전체뿐 아니라 한 부분 한 부분이 예술작품인 석탑을 다루는 일이 가장 어렵다"며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를 맡게 돼 마음이 설레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가슴을 짓누른다"고 털어놨다.
2001.11.01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