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의 연둣빛 신록이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저절로 숲 속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봄기운으로 푸석푸석하던 오솔길은 어느새 꽃비가 하얗게 깔린 비단길로 변해있었고, 길옆의 시냇물은 봄 노래를 재잘거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꼭 알맞은 기온 속에서 복숭아꽃, 살구꽃 등 울긋불긋한 꽃대궐 속에 앉아있자니, 마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숲 속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록 계절은 다르지만, 미국의 민중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가 아래의 시를 노래한 심정이 생각났다.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있다.
이 글은 4행 4연으로 구성된 '눈 내리는 숲가에 서서'라는 시의 마지막 연이다. 시인은 숲가에 서서 황홀경에 빠진 채 아름다운 자연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인간의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 마음은 '보살'이라는 이상적 인간형을 앞세우고 실천불교 운동을 벌였던 대승불교 창시자들의 고귀한 뜻을 생각나게 한다. 아름답고 고요한 깨달음의 숲 속에서 한없이 머무르고 싶지만(上求菩提), 고해에 빠져있는 중생과의 거룩한 약속 때문에 사바세계로 돌아와 아픔을 함께 하는(下化衆生) 거룩한 선각자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이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하는 그 힘은 '지켜야할 약속'에서 나오는데, 그것을 경전에서는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법장 비구로 하여금 보살행을 닦아 아미타불로 성불하게 만든 것도 그 굳센 서원의 힘이었고,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이 공덕을 이루기 위한 지름길로서 우리에게 간절히 일러주는 방법도 '행원(行願)'의 길이다.
'서원'을 가진 인간에게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오는 것이다. 서원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未來)'을 '장차 올 시간(將來)'으로 바꾼다. 일상의 관성에 따라 그저 그런 삶을 살던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자신의 뚜렷한 장래의 모습을 그리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현재는 미래를 성취하기 위한 치열한 실존적 삶으로 바뀐다. 과거의 업이 나를 옭아매더라도, 미래의 내 모습이 나를 해방시켜 앞으로 달려나가게 하는 것이다. 서원은 미래를 미래완료로 바꾸는 확신을 심어주고,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바른 지표를 제시해 준다. 법회 때 무심히 따라 외우는 '사홍서원'이 얼마나 소중한 인생의 나침반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보살'의 길로 들어선다.
인생의 성패는 자리(自利)가 아닌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자신만의 서원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