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신필(神筆) 김생(金生, 711~791)이 스님이 되어 우리 곁으로 다시 왔다.
중국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능가하는 명필로 전해오는 김생. 예서, 행서, 초서에 뛰어나서 해동의 서성(書聖)으로 불리우는 그가 스님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김생이 스님이었다는 기록이 사실로 공식 확인된 곳은 바로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65-1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김생사(金生寺)터.
충주불교총연합회(회장 의천스님)와 충주시(시장 이시종), 김생연구회(회장 손경주) 등이 힘을 모아 김생사지를 문화재로 지정, 복원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선양사업에 나서 불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주시는 김생사지가 지난해 12월 충북도 문화재(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됨에 따라 8,000만원의 예산으로 지난달까지 지표조사를 끝내고 다음 달부터 발굴조사에 들어간다.
충주시는 7억원의 예산으로 내년까지 김생사지를 복원하고 김생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국민역사교육장으로 가꿀 계획이다.
명필 김생이 창건한 사찰터인 김생사지는 항아리 형태의 석조물 1곽을 비롯해 주변지역 3,550평이 충북도 문화재 지정과 함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김생사지의 기념물 지정사유는 <수산집(修山集)>의 김생사중수기(金生寺重手記)와 <신증동국여시승람>의 기록을 통해 북진애(北津崖)∼예성의 북쪽나루, 즉 현재 위치한 김생사지에서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음이 고증된데 따른 것.
또한 발굴당시 당초문 암막새의 완형이 발견됐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경영사실이 입증되고 김생이 쌓았다고 전해진 김생제방이 확인됨에 따라 이번 충북도 기념물로 지정되게 됐다.
현재 남아있는 석조물은 방형석재(초석) 1매, 판석재 1매, 탑신석으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놓여있으며 건물의 동남쪽 기단부에 길이 12.4m, 높이 52∼90㎝의 석축이 있다.
김생이 종이에 쓴 글씨는 지금까지 전해 오지 않으나, 백률사 석당기, 창림비, 화엄사 화엄경석각, 유점사 판액 등 대부분 사찰의 비문과 액자에 적힌 글씨가 전해지고 있다.
충주시는 그동안 김생연구회와 함께 김생사지의 사적지 지정을 위해 집자비 건립, 선양동산 조성계획 수립, 김생사지 발굴 및 지표조사, 김생서첩 발간 등을 추진해 왔었다.
김생 역사복원의 숨은 주역인 김생연구회 손경주 회장은 “김생은 청량사 경내의 김생굴(窟)에서 서도를 닦았고 김생사터에서 두타행을 닦은 스님이었기에 김생사가 복원되면 스님이 상주하게 될 것”이라면서 “늦었지만 불교계가 김생을 스님으로서 재조명하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043)847-9227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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