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담긴 평화와 인고의 정신이 인류 보편의 가치로 세계인의 가슴에 담긴다. 초대형 총체음악극 ‘고려의 아침’이 2002년 월드컵을 여는 기념 공연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음악, 연극, 무용 등 독립된 무대 예술의 여러 장르를 아울렀기 때문에 총체음악극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이 작품은 2002년 5월 25일~30일 서울 올림픽공원 야외무대(예정)에서 월드컵문화예술공연 제1호로 그 막을 올릴 예정으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팔만대장경>의 조성 동기와 과정이 소재이자 주제다.
고려시대의 불교 사상과 미학을 오늘의 무대 언어로 펼치는 ‘고려의 아침’은 13세기 한국 문화와 평화 사상을 인류 공통의 언어인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제작의도다.
새벽 산사의 풍경소리, 실크로드를 달려오는 몽고군의 말발굽소리, 아수라의 비명과 그에 대비되는 천상의 합창 등 ‘고려의 아침’에서 선보일 음악은 국악선율의 비장한 정서와 서양 오케스트라의 정제된 선율이 어우러진다.
<팔만대장경> 속에 담긴 진정한 평화의 힘을 노래하고, 고려인들의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를 재현함으로써, 파괴와 경쟁으로 물든 21세기 인류를 향해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과 공존의 의미를 전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예술단 단장인 신선희 씨가 극본을 쓰고, 이병훈 박일규 신선희 씨가 공동연출하는 ‘고려의 아침’은 제1부에서 몽고군의 침략을 탑돌이를 하는 호국법회로 극복하려는 고려인들의 모습과 판경당에서 피어나는 고려 혜명공주와 판각수 거인의 사랑, 그리고 거인의 꿈속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아비규환을 그려낸다.
제2부에서는 고려 연등회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완성을 앞둔 팔만대장경 판경당에 몽고군이 불을 지르자 대장경판을 구하려 불길 속에 들어가 목숨을 잃은 혜명공주와 불타는 판경당 앞에서 삼천배를 올리는 판각수들의 기원 속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다시 판각수들이 대장경 완성을 위해 배를 타고 강화를 떠나 남해로 향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한편 ‘고려의 아침’은 월드컵 개막 직전에 펼쳐질 내년 본 공연에 앞서, 지난 9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야외무대에서 시범공연으로 제1부를 선보였다.
이날 공연에서 ‘고려의 아침’은 야외공간의 가장 큰 장점인 축제성을 살려 주변환경을 활용하고, 무용과 음악을 통해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하려는 목적을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극중 인물들간의 갈등이 구체성을 잃은 채 구호에 그치고,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밋밋하고 처진 느낌을 주는 안무는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예술단 연출진은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출연진을 보강하는 한편 아직 완성되지 않은 2부로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의 제전으로서 개최국의 문화적 역량을 증명할 2002년 제17회 월드컵은 한국 예술의 유구한 전통과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 본래의 사상을 선보일 좋은 기회다.
총체음악극 ‘고려의 아침’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형식이 세계 보편의 가치를 담은 틀거리로 자리잡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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