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가 1994년 펴낸 <팔만대장경 선역본>이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영인본으로 나왔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1937년 인경(印經)해 묘향산 보현사에 보관해 오던 판본을 저본으로 북한이 우리말로 쉽게 풀어 펴낸 <선역본>(전 17권)을 최근 영인본으로 출간했다. 북한측과 정식 계약을 맺어 출간한 것은 처음이다.
<선역본>은 팔만대장경 전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은 아니다. 한국 불교사와 관련이 있는 중요 경전과 불교를 이해하는 데 참고자료가 될만한 경전들을 선택해 모두 22종 294권을 번역하고 다시 17책으로 묶었다. 팔만대장경 전체 분량의 5% 정도에 해당한다.
‘주체성, 합리성, 실용성’이라는 번역 원칙에서 알 수 있듯 민족문화유산 보존 차원에서 한문을 모르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 만큼 자연스럽고 생생한 번역이 <선역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얼마 전 동국역경원에서 완간한 <한글대장경>의 <미사색부화혜오분율>과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불교학자가 아닌 민족고전연구소의 한문학자들이 번역해 전문성에서는 <한글대장경>에 다소 떨어지지만 ‘일상어 번역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 한결 쉽게 읽혀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삼악도(三惡道)’로 부르는 것을 <선역본>에서는 ‘세 갈래 나쁜 세상’으로, ‘범행(梵行)’을 ‘깨끗한 행실’로 번역하고 있다. 또‘선(善)의 법, 무기(無記)의 법’으로 번역하는 ‘선무기법(善無記法)’은 ‘착한 것,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으로, ‘안반념(安般念)’은 ‘호흡수를 세는 관법’으로 풀어놨다. 경어체나 존칭의 사용이 적고 중간 중간 팔만대장경의 쪽수를 표기한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한글화에 치중하다 보니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 보충설명을 해야 할 경우도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고, 부사의 남용이라든지 각주가 없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번역한 사람만 이해하는 번역 혹은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은 번역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라며 “선역본이 지닌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 어법에 맞게 교정, 교열한 후 통합 대장경 시리즈 형식으로 CD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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