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성과 비의성(秘義性)을 특징으로 하는 의상계 화엄학파는 폐쇄적이고 이론적으로 자기 완결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사토 아츠시·동양대학 강사)
“비의성이 다른 교학과 집단에 대해 ‘닫힌 사상’을 뜻하는 것이라면 화엄사상의 본질에서 벗어난 오류를 범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해주스님·교수)
지난 9월 22일 보조사상연구원 국제 학술 발표회에서는 신라 불교학의 성격을 놓고 참석자들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갔다. 이 날의 주제는 ‘신라 유식학과 화엄학의 재검토’. 일본 동양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있는 두 소장학자가 나서 신라 불교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사토 아츠시 씨는 의상계 화엄학파의 구체적 인물이나 문헌, 사상적 특색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다른 학파와 구별되는 의상계 화엄학파만의 특징을 대담하게 제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토 씨는 ‘실천적 화엄사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의상계 화엄학파의 성격을 한 마디로 ‘구의성과 비전성’으로 규정짓고, 무주(無住)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오척성불론’을 그 사상적 특징으로 설명했다. ‘오척성불 사상’은 오척의 자기 신체가 곧 진리와 일체라는 의상학파의 사상을 다른 화엄학파와 구별하기 위해 발표자가 붙인 용어.
사토 씨는 “<화엄경>과 <기신론> 양자를 다 같이 중시했던 당시 풍조와는 달리 의상계 화엄학파는 오로지 <화엄경>이나 화엄교학만을 심화시킨 학파”라며 “<화엄경>만을 특화한 배타성 때문에 한국 내에서조차 고려 의천에 의해 비판받게 되었으며 중국화엄이나 일본화엄과 달리 다른 집단이나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론에 나선 해주 스님은 “의상 중심이라면 몰라도 <화엄경> 중심의 교학이 어째서 전파될 리가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 부분에 대해 좀더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주장대로라면 의상학파가 중시한 것은 법이라는 말이 되는데, 법을 중요시했다기보다 법성을 중요시했고, 오척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오척법성에 주목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오척성불사상이라기보다 오척법성 성불사상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원측의 오성각별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키츠가와 토모아키(동양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씨는 원측이 법상종 승려이면서도 ‘오성각별’이 아니라 ‘일체개성’을 주장했다는 기존의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키츠가와 씨는 “원측이 일체개성사상을 창도하였다 혹은 일제개성과 오성각별 사상의 조화를 시도했다고 하는 학설의 근거가 되었던 <해심밀경소>의 ‘일성개성의 증문에 대한 해석’ 부분을 재검토한 결과 그러한 주장의 명확한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오히려 원측은 오성각별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해심밀경소>는 기본적으로 <해심밀경>의 주석문인만큼 경전 본문과 원측이 제시한 과문을 중심에 두고서 논의의 전개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원측계 교학을 배척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하는 혜소의 <료의등>에 원측이 일체개성의 입장에 서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 없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영근(서울 산업대) 교수는 오성각별을 언급하고 있는 문단과 구절의 전후맥락, 그리고 원측의 남아있는 다른 저술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불교에 대한 이해방식 등 여러 가지 맥락을 고려할 때 “원측의 진의는 여전히 일체개성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고영섭(동국대 강사) 씨는 “이 때의 일체개성은 오성각별과 상대되는 일체개성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를 포섭하는 상위개념으로서의 일체개성”이라며 “두 사상의 조화를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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