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관련 전산화 과정에서 성과물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정작 경전 대중화의 반석을 다지는 데에는 제몫을 못하고 있다.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나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전 전산화는 학자들의 이용 빈도를 높인다는 목적도 있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에게도 경전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번역 작업은 수년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한문 경전에 대한 번역 작업의 첫 단계인 표점 작업이 지금까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의 경우, 고려대장경 전산화 과정에서 자체적인 표점 작업을 진행해 왔으나, 공개를 꺼리고 있다. 어렵게 추진하고 있는 작업이 자칫하면, 학자들의 '맞다' '틀리다' 논쟁으로 비화되고, 자체적인 작업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불전연구소 역시, 2년째 <한국불교전서>의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원전의 표점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불전연구소 내 연구원들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인력과 재정이 뒤따르지 않아 역부족이다.
표점이란 한문경전을 읽을 때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문장부호'와 '조사'를 집어넣는 작업. 그런데 국내 한문 경전 대부분 당·송 시대의 한자와 문법으로 기록되어 있어, 표점을 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표점 작업의 노하우 공개를 꺼리고 또 관련 불교학자들이 이 작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