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사의 끊어진 고리, 조선후기 불교사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논문이 나왔다. 화제의 논문은 김순석(독립기념관 연구원) 박사의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현황과 과제'.
창작과비평사가 9월 초 발간하는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에 수록된 이 논문에서 김 박사는 "해방 이후부터 1998년 말까지 발표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논문은 64편에 불과하며, 이 또한 조선후기 불교에 대한 개괄 내지는 문제 제기만을 하고 있을 뿐, 사상·법맥·종파·사찰 경제 등을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조선후기 불교 사상의 보고인 사기(私記)를 검토한 연구가 거의 없어 당대 불교 사상 이해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스님의 신분 역시 명확히 연구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천민'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 왕조의 억불정책에 대해 당대 불교계의 저항 역시 연구되지 않고, 사찰 경제의 규모와 토지 소유 형태 및 수취(收取)에 관한 부분도 미결의 과제이며, 조선후기 불교 종단의 구조와 법통도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스님들은 온갖 잡역에 시달렸고, 종파들은 통·폐합돼, 그 수가 현격히 감소했던 조선후기의 암울한 불교사가 또다시 학자들에게 소외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조선후기 불교는 기층민의 생활 속에 파고든 살아있는 불교'라는 게 불교사학계의 묵시적인 시각일 뿐, 정작 학자들이 당대 불교사 연구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을 제도권 학계와 종단에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가 미진한 원인을 진단했다.
연구자의 부족은 경쟁 없는 연구 풍토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연구의 첫 단계인 관련 사료 정리마저도 등한시하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불국사·화엄사 등에 다시 전각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해 모시며, 범종을 주조하고, 탱화를 그려서 도량을 장엄할 만큼 당대의 불교는 분명 살아 있었지만, 폭넓은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그 시대의 불교는 축소되고 폄하될 수밖에 없다.
김 박사는 논문에서 "조선후기 불교사는 오늘날 불교계 현실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을 밝힐 단서"라고 지적하고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초라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를 위해 제도권 학계와 교단은 당대 불교사 복원에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현실도 어두워진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의 갈 바를 일러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 불교사에 대한 제도권 학계와 종단의 관심이 기대된다.
■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성과
해방 이후 1998년 말까지 발표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논문은 총 64편. 이 분야를 처음으로 다룬 것은 1947년 차상찬 박사의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뒤이어 1959년 백성욱 박사의 <송수기념 논문집>에서 조선후기 불교사상을 고찰한 '조선불교 호국사상에 관하여', '추사의 선학변(禪學辨)', '유불상교의 면에서 본 정다산' 등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는 이광린의 '이조후반기의 사찰 제지업', 우정상의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防番錢)에 대하여' 이종영의 '승인호패고(僧人號牌考), 한기두의 '백파의 선문수경' 등이 나와, 조선후기 사원의 역할과 신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1970년대는 조선후기 불교사 전반을 분석한 이기영의 '왕조말기의 불교'를 비롯해서 백파 긍선과 추사 김정희 사이에 벌어졌던 선(禪) 논쟁에 관한 논문과 서산대사의 선사상을 조명한 논문들을 포함해서 16편이 논문이 발표됐다.
1980년대는 20편의 논문이 나왔는데, 조선전기부터 후기까지 사찰의 경제를 연구한 김갑주의 <조선시대 사원경제연구>가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의군총섭(總攝)에 관한 연구와 승계(僧契)에 관한 연구도 연구됐다. 또한 김영태·고익진·최병헌 등이 현 대한불교 조계종의 법통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는 등 조선후기 불교의 연구 영역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1990년에서 지금까지는 총 20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조선후기 스님의 사기(私記)와 문집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스님들의 법맥과 <산사약초(山史略抄)>와 같은 개별 사찰의 역사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