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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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념-왜 원효사상인가
불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은 '통일 사상' 하면 흔히 원효사상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화쟁사상과 원융·회통사상이 삼국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이 재직당시 원효사상으로 통일이념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것처럼, 삼국이 분열에서 통합을 모색하는 통일전후기에 살았던 원효스님의 삶과 생각을 통해 오늘 이땅의 민족 모순과 지역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원효스님의 통일사상은 어떤 것일까. 사실 불자들조차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아마도 원효스님의 심원한 사상세계를 다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방대한 저술의 양이 말해주듯이, 원효스님의 불교 연구는 대·소승, 경·율·론(經·律·論) 어느 것에도 미치지 않는 바가 없었다. 교학 연구에 있어서 원효스님은 어느 종파에 얽매이지 않았음은 물론 그것을 보다 높은 포괄적 체계 속에 총섭 시키고 있음이 두드러진다.

<금강삼매경론>에서 그는 "만법(萬法)이 일불승(一佛乘)에 총습(總濕)되어야 하는 것은 마치 대해(大海)중에 일체 강물(衆流)이 돌아가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곧 상호대립적인 사상과 교외를 모두 융회하여 일불승에로 귀결시키려 했다.

원효스님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가장 독창적 저술인 <십문화쟁론>에서 그의 이같은 사상적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불교 교의와 인간의 온갖 다양한 주장들을 없음(空)과 있음(有), 나(人)와 세계(法) 등 열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묶고 화쟁의 논리에 입각하여 그것을 하나 하나 회통(會通)시키고 있다. 여기서 원효스님은 모든 주장을 열린 자세로 수용하면서 하나하나 그들을 논리적으로 교통정리 한 뒤에, 자신의 견해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효스님의 중심사상은 화쟁(和諍)사상 또는 화회(和會)사상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화쟁'이란 그의 중심 사상이라기보다는 '중심 논법'이다. 이 때 그의 화쟁은 반드시 회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화쟁회통(和諍會通), 즉 화쟁에서 그치지 않고 회통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화쟁보다는 화쟁회통의 준말인 '화회'가 더욱 정확히 그의 중심논법인 셈이다.

화쟁이란 말은 논쟁(諍)을 화해시킨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용어가 아니다. 원효스님은 각기 다른 대립적인 이설(異說)들을 회통(會通)시켜 하나의 큰 진리를 찾게 하고자 한 것이다. 화회(和會)의 방법에 있어서, 원효스님은 모든 주장에 대해 옳고 그른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개입시키지는 않는다. 오직 최고의 진리, 즉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하나의 뜻으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 때 화쟁회통의 논법을 통해 밝혀진 심성(心性)의 세계가 그의 중심사상이다. 불심인 동시에 우리들의 중생심인 일심(一心)사상, 그것이 곧 원효의 중심사상인 것이다.

이 일심사상은 남·북한 주민의 동질성, 즉 한마음(일심)으로 통일이 가능함을 시사해 준다. 정치·경제적 통합에 앞서 민족 동질성 회복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논문 '원효의 통일학-부정과 긍정의 화쟁법'을 쓴 고영섭 박사(동국대 강사)는 "마음의 분열을 통해서 세계의 분열이 일어남을 통찰한 원효는 동시에, 마음의 통일을 통해서 세계의 통일이 가능함을 통찰했다"고 강조한다.

학자들은 원효의 통일사상이 갈등과 전쟁의 시대상황에서 발현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백제와의 끊임없는 전쟁, 그리고 법상파 안에서도 서명 학파와 자은 학파간의 논쟁, 이런 갈등을 조화롭게 화해시키고자 한 사상이 바로 화쟁사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화쟁의 전통은 원융·무애, 원융·회통의 통불교적 사상으로 발전했다. 진리의 세계와 속세가 원만하게 융합되는 화합과 조화의 정신이 의천(義天, 1055-1101)과 지눌(知訥, 1158-1210)스님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불교사상의 통불교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급격한 남북화해와 통일의 시기는 새로운 통일사상의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민족 전통사상을 형성해 온 불교는 늦었지만 삼국통일의 기반이 된 원효사상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민족적 통일이념의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원효와 통일사상과의 연관성을 다룬 논문은 박성배 교수의 '원효의 화쟁논리로 생각해 본 남북통일문제' 등 몇 편에 불과하다. 논문 '화쟁사상의 연구사적 검토'를 쓴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원효의 화쟁사상은 물론 의상의 화엄사상 등 불교가 내포하고 있는 통일관련 사상을 해석학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재경 기자
200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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