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미륵사에 3개의 금당을 짓고, 신라는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9월 29일 개최한 제2회 경주문화유산EXPO 학술회의에서 노중국(계명대) 교수는 "백제는 평화적 공존을, 신라는 혁명적 통일을 기원했다"는 대답을 제시해 주목된다.
3금당의 미륵사를 세운 백제 무왕은 고구려·신라·수·당·왜 등과 실지양단의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는 데 주목한 노 교수는 "실지양단 외교정책은 주변 국가와의 세력 균형을 통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미륵사는 무왕이 세운 호국사찰인 만큼, 그의 정치철학이 충분히 반영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특히 미륵사의 3금당이 하나의 회랑 안에 배치되어 있다는 고고학적 발굴을 강조하고, "이것은 주변 국가와의 공존과 세력균형 즉, 용화세계의 염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황룡사 구층탑을 지었던 선덕여왕 역시 말갈·왜·고구려 등의 침략을 막아야 했고, 급기야 642년에는 미후성 등 40여성을 빼앗기는 국가적 맞았다. 이에 따라 노 교수는 "이 과정에서 신라는 종래의 세력균형 의식을 버리고 삼국을 통일하여야 하겠다는 이른바 '통일의지'가 형성되어 간 것으로 생각된다"며 "9층탑은 이러한 의지의 종교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9층탑은 당시 백제를 위협했던 일본(1층), 중화(2층), 오월(3층), 탐라(4층), 응유(5층), 말갈(6층), 단국(7층), 여진(8층), 예맥(9층) 등이며, 황룡사 구층탑은 9개 주변국의 항복과 천하통일의 의지인 셈이다.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동아시아 역사와 21세기 문화교류'를 주제로 마련한 이번 학술회의에는 '7세기의 신라서역 구법승 고찰'(김상현 동국대), '신라와 백제의 교섭과 교류'(노중국·계명대), '신라승을 통해 본 신라의 국제관계'(권기현 위덕대), '삼국유사-설화에서 테마파크까지'(이정옥 위덕대), '문화교류와 관광의 역할'(정원일·김규호 경주대) 등의 논문도 발표됐다. 연구소는 이들 논문을 모아, <경주세계문화EXPO논총> 제2호를 발간했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