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문화의 국제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학술회의가 열린다.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등 주최로 9월 29일 경북 경주시 동국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21세기 문화교류’.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행사의 하나이다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7세기 신라서역 구법 고승 고(考)’를 주제발표한다.그에 따르면 신라의 구법승 7명이 불법을 구하러 인도로 갔다.당나라 스님 현조는 2차례 인도로 갔는데 1차 때는 신라 스님 현각이,2차 때는 신라 스님 혜륜이 그를 수행했다.
하지만 현각은 인도에서 병에 걸려 40세로 입적했고 혜륜 역시 돌아오는 길에 병에 걸려 60세로 입적했다고 한다.또 신라 스님 현태는 인도에 2번이나 다녀왔고,신라의 혜업과 아리야발마도 인도 불교학의 중심인 나란타사에서 유학하다가 입적했다고 한다.
즉 7세기 당시 신라의 문화는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당을 거쳐 인도에 까지 뻗어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스님들은 문화의 전파자였다.권기현 위덕대 교수는 ‘신라승을 통해 본 신라의 국제관계’에서 '신라는 579년 일본에 불상을 보낸 이후 일본에 문화를 전달한 중심이었다'고 주장한다.그에 따르면 687년 9월 신라왕자 김상림이 불상 발우 불구 등을 일본에 보내고,다음 해에는 신라승 전길 등 50여 명이 건너가는 등 7∼8세기는 물론 9세기 초인 818년 겨울에 신라승려 26명이 일본으로 갔다는 기록도 있다.
당나라 인도 일본과 교류하면서 문화를 주고 받았던 신라는 백제 고구려와의 국제적 교류도 활발하였다.
노중국 계명대 교수가 주제발표하는 ‘서동설화로 본 신라와 백제의 교류’는 신라와 백제의 문화교류에 대한 것이다.그는 '백제는 중국 남조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사비성의 건설을 통해 기술 수준을 높였으며 이러한 높은 수준의 기술을 신라에 전파했다'고 주장한다.
신라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 후 세운 최초의 절을 흥륜사라 했으며 또 그 주불을 미륵불로 삼았다고 한다.노 교수는 '그것은 백제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신라의 흥륜사보다 20년 앞서 백제에 흥륜사가 있었고 그 주불이 미륵불이라는 것을 예증으로 제시한다.
그 반대로 신라가 백제에 문화적 영향을 끼친 예도 있다고 한다.그에 따르면 백제의 미륵사와 신라의 황룡사는 같은 연대에 설립됐다.그는 백제 미륵사의 가람배치가 동양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3탑 3금당’이라는 점에 주목한다.즉 그는 '신라 황룡사의 가람배치가 당시로서는 유례없이 3금당(탑은 1탑)을 취한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0.09.28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