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역사를 지닌 프랑스 제3의 도시 리옹. 리옹 시민들은 리옹을 '무용의 수도'라고 부른다.
그러한 자부심은 그들이 파리의 그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믿는 무용원이 여기에 있어 무용가를 길러내는 요람이 되고 있다는 것말고도 1,000석 규모의 춤 전용극장 '메종 드라당스'와 2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무용축제 '리옹 댄스 비엔날레'가 있기 때문이다.
9월 8일 시작돼 30일까지 계속되는 올해의 제9회 리옹댄스 비엔날레는 '실크로드'를 주제로 옛날 동서양 문물이 오간 비단길의 아시아 여러나라 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인 대만의 '클라우드 게이트'(雲門) 무용단이 24일 메종 드라당스에서 '방랑자의 노래'로 첫공연을 했다.
이 단체를 이끄는 린화이민(53)은 세계 3대 무용전문지에 속하는 독일의 '탄츠'가 21세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안무가로 꼽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을 보려는 관객들로 메종 드라당스가 꽉찼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피안의 세계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행을 1시간 반동안 무대 위에 펼쳐졌다.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왼쪽에 불교 수도승 차림의 린화이민이 합장한 채 서 있다.
그의 머리위에서 한줄기 금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의 어깨에 부닥쳐 튕겨나가는 찬란한 빛, 그것은 쌀알의 소나기이다. 무대 바닥에도 쌀알이 잔뜩 흩어져 있어 황금빛 사막처럼 보인다. 무용수들은 그 한복판에서 춤추었다.
동작은 매우 느렸다. 태극권을 보는 듯한, 부드럽지만 강렬한 에너지로 뭉친 몸짓이다. 그것은 몸으로 하는 선(禪)과 같았다.
실제로 이 무용단의 무용수들은 매일 명상훈련을 하며 거기에 발레와 현대무용, 중국 경극의 요소까지 흡수해 춤을 춘다고 했다.
느린 동작이 여러 번 반복됐고, 그 중간중간의 고통스럽거나 격려한 몸짓이 관객들로 하여금 신경을 곧두세우게 했다.
그들이 쌀알을 흩뿌릴 때 허공에 그려지는 금빛 곡선은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금빛 커튼이 되어 무대 뒷면을 덮으면서 폭포처럼 쏟아졌다.
놀라운 광경에 관객들이 탄성을 지르는 동안, 무용수들은 환희어린 춤으로 순례의 막을 내렸다.
여러 번의 커튼 콜이 끝나고도 관객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좀 지루하다는 평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놀랍다' '아름답다' '굉장하다'고들 했다.
기의 흐름을 바탕으로 한, 서양인들에게는 낯선 몸짓이 신비롭다는 표정들, 이와 같은 새로운 경험은 이번 비엔날레가 기대하는 바이기도 했다. 옛날 비단길이 동서양을 연결했듯 리옹은 춤의 비단길에서 동양을 재발견하고 있었다.
2000.09.26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