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중국미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마련됐다.
지난 92년 설립된 한빛문화재단(이사장 한광호·韓光鎬)이 9월 21일부터 오는 12월2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화정박물관(월요일 휴관.02―798―1954)에서 열고 있는 ‘중국미술소장품전’이 바로 그것이다.
재단 소장품중 도자기·금속공예·회화·서예·복식·자수·조각 등 중국미술의 각 분야를 망라한 유물 180여점을 선보이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근대이전 우리나라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중국미술의 화려하고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한빛문화재단은 500여점의 중국미술품을 해설한 도록집 ‘중국미술소장품’(전2권)도 전시회에 맞춰 발간했다.
이번 전시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역시 도자기와 회화류. 회도(灰陶)·녹유(綠釉)·삼채(三彩)등의 고대 도자기에서부터 송대 이후의 청자·백자·갈유(褐釉)등과 명청대의 청화백자를 비롯한 오채(五彩)·분채(粉彩)등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 공예품들은 우리 도자기와 비교해 볼때 색다른 느낌을 준다.
신석기시대 앙소(仰韶)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채도(彩陶)를 비롯해 한대 기마무사 도용(陶俑) 등이 눈길을 붙잡으며, 청대 각종 도자기에서 보여지는 각종 문양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도자기와는 또다른 디자인 감각을 보여준다.회화류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대 이후부터 20세기까지 활약했던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재로 삼고 있는 대상도 산수·인물·초상·화조·사군자 등 폭넓다. 이밖에 청동에 입사(入絲)한 금속공예품을 비롯해 다채로운 법랑(琺瑯), 아각(牙角), 칠기 등도 출품됐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무엇보다 국립기관도 아닌 개인이 만든 재단에서 이같은 방대한 규모의 중국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전적으로 한빛문화재단 설립자 화정(和庭) 한광호(77)씨의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다.
현재 한국삼공㈜회장과 한국 베링거인겔하임 회장 등을 맡고 있는 한씨가 지난 40여년간 기업경영을 하는 틈틈이 국내외에서 수집한 한국과 중국, 티베트 등 동아시아 미술품만도 1만여점에 이른다. 소장품 가운데는 티베트 유물이 가장 많아 지난 97년과 99년 티베트 불교회화를 소개한 도록집 ‘탕카의 예술’1.2권을 펴내기도 했다.
유물 대부분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주로 경매와 외국 딜러들에게서 구입한 것이라 신뢰할만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실제 이번 전시를 자문한 정양모(鄭良謨)전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영박물관의 중국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제인 포탈도 한빛문화재단이 소장한 중국 도자기들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개관을 앞둔 대영박물관 한국실의 유물구입비로 100만파운드(약 16억원)를 기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한씨는 현재 남산의 단독주택에 마련된 전시관 규모의 화정박물관을 본격적인 박물관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2000.09.21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