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은 불법을 담고 있는 그릇이지, 그 자체로 진리는 아니다. 부처임의 가르침이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실천이다." 9월 22일 서울 관문사 옥불전에서 열린 제3회 천태국제학술대회에서 데이비드 W. 채플(미·하와이대) 명예교수와 가와가츠 마모루(일·다이쇼대) 교수는 이론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법화경>의 교관이문쌍수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 같이 주장해 주목된다.
천태사상 중 교관이문쌍수는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니며 우리가 불법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뜻하는 데 착안한 두 교수는 "교관이문쌍수(敎觀二門雙修)는 종교간의 벽 대신 다리를 놓고, 지구촌 문명을 분열시키는 대신 하나로 엮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
또한 "오늘날 전쟁·살인·지배·약탈 등의 반문명적 행위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종교인과 다른 종교인' 간의 대립에서 비롯된다"며 "교관이문쌍수의 실천 덕목은 대립의 구도를 화합으로 돌리는 회삼귀일(廻三歸一)과 일불승(一佛乘)에 근거한 불국토를 재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명이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에 의해서 창안되는 만큼, 문명간의 충돌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언급하고 있는 천태사상 즉 교문이문쌍수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천태불교와 지구촌'을 발표한 데이비드 교수는 "경전의 의미와 중요성은 경전 그 자체 속에서 추상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반응하고 경전을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발견된다"며 "경전이 지향하는 궁극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에 따르면 <법화경>은 마하가섭의 광덕(光德), 수보리의 보생(寶生), 목건련의 음악(意樂) 등으로 이미 불국토의 실체와 정신을 기록해 놓았지만, 정작 이 경전을 읽는 후대 사람의 불국토를 향한 실천적 노력이 부족해, 그 세상을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와가츠 교수 역시 '천태사상의 문명론적 신해석-화합의 사상을 중심으로'를 발표하고, "교관이문쌍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법화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실단의(四悉檀義)' '사종석(四種釋)' '사중흥폐(四重興廢)' 등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단의 등은 천태사상에 있어서 판단 기준·이해 방법·분석 입장 등의 사고 양식을 설명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불교의 이해와 실천 즉 부처가 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부처님의 깨달음 혹은 진여나 불성 등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받으면 '무엇 무엇이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로지 실천으로만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와가츠 교수는 "<법화경>에서 보여준 깨달음은, 의미나 내용이 아니라 깨달음의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시키는 데 있다"며 "이것의 초석이 되는 게 <법화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실단의와 사종석 그리고 사중흥폐의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이날 학술회의에는 '21세기 문명과 법화사상'(권기종·동국대 교수), '문명의 전환과 천태·법화사상'(강건기·전북대 교수), '21세기 천태 이론의 신앙'(황샤넨·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교수), '천태 성구실상 분석'(쇼치·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교수), '올 수밖에 없는 세기를 향하여'(다다고쇼·일본 다이쇼대 교수), '미얀마의 불법'(우 싼 린·종교성 국장) 등이 발표돼, 부처님과 천태 지자 대사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조명했다.
이번 학술회의를 준비한 지천규(천태불교문화연구원) 박사는 "국내 천태학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국제학술대회가 천태학 연구의 물꼬를 트는 데 일조할 것"이라며 "국내 천태학 연구는 앞으로 의천 스님 이후 천태학의 변화를 조명하고 대장경에 수록된 천태사상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밝히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