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때 아이들과 함께 '목아박물관' 견학 어때요?
가을입니다.
하늘이 참 파랗죠? 이 파란 하늘과 아직은 잎이 울창한 나무들... 궁합이 딱 맞는군요.
혹시 집에 아이들이 있다면, 자동차를 끌고, 아니면 버스를 타고 경기도 여주를 방문해 보세요.
서울에 사시는 분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만 달리면 된답니다.
이 곳 경기 여주, 이천 일대는 토양이 기름져 맛있는 쌀 생산지로 유명할뿐만 아니라 좋은 황토흙으로 구운 도자기가 아주 유명합니다.
여주터미널에서 내려 차를 타고 15분 정도를 더 가면 '목아박물관'이라는 예쁜 이름의 아담하고 깨끗한 박물관이 나옵니다.
오늘 이 곳을 소개하려고요.
사람들은 흔히 이 '목아박물관'을 '불교박물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목아 박물관에 관한 얘기를 들어왔는데, 막연히 '목아'라는 이름이 주는 단아한 느낌 때문에 '야릇한 선입견'을 가져왔습니다.
'아주 소박하고, 예쁘고, 조용할 것 같은' 선입견 말이죠.
'피리를 불며 비천하는 관음불' ⓒ 김 현
알고보니 '목아(木芽)'란 이름은 '나무 목, 싹 아', 이곳 박물관의 설립자인 박찬수 관장의 법명이더군요.
하지만 '선입견'은 한낱 '선입견'일뿐...
직접 가 본 목아박물관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 눈에 띄어 조금은 당혹스럽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언뜻보면 성모 마리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마리아를 닮은 '백의 관음상'. 믿고 의지하는 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란게 닮은 꼴이라는 얘기를 하고픈 걸까. ⓒ 김 현
우선은 '불교 박물관'이란 이름과는 다른 색채의 전시물들이 많았다는 점을 꼽고 싶군요.
원래 우리나라의 불교문화가 '토속 민간 신앙'과 어우러진 '습합'의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이곳 목아 박물관은 조금 지나치리만큼 다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찰 양식을 따라 건물을 짓지도 않았으면서 건물(법당)에서 부처님께 절을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는가 하면, 마치 성모마리아상의 느낌을 주는 관음불상을 세워 놓기도 했답니다.
또 박물관 곳곳에 우리나라 민간 신앙의 대표 주자격이기도 한 장승과 솟대가 어우러졌다가, 엉뚱하게도 현대적인 느낌의 조각과 호랑이, 표범, 코끼리, 사슴 등의 금동 동물상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까아만 '세월의 옷'을 자연스럽게 입어가는 목재 조형물과 늘 새것 같은 하얀 대리석 조각, 장흥의 토탈 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청동 조각 등 현대적인 조형물과 전통적인 조형물이 약간은 '부조화' 속에서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혼용' '해체'의 문법을 사용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더군요.
""장승을 닮은 삼존불"" ⓒ 김 현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철학도 없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죠.
목아 박물관장 박찬수 씨 ⓒ 김 현
'목아 박물관'의 설립자이자 실제 많은 작품을 손수 제작한 목공예가 박찬수 씨와 직접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전통의 뿌리와 새로운 문화의 접목을 주요한 작업의 '화두'로 삼고 있더군요.
""박물관 왼편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삼존 불상은 기존 삼존불의 개념에 장승이라는 민간 신앙을 접목한 것이며, 성모상을 닮은 관음불은 '종교는 서로 통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
""나무로 제작한 여러 장승군들은 부처가 되고 싶은 나무의 마음을 담았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한 조형물들은 동자승의 의미""한답니다.
실제 박찬수 관장은 공예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정통'이라 할 만한 솜씨를 보유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차돈상"".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다. 박찬수 씨는 6개월 이상 나무를 깎아 불상을 만든다. ⓒ 김 현
예컨대 불상의 옷을 처리할 때 아주 매끈하게 처리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방식이었는데, 조각도를 흔들어 털옷의 느낌을 낸다거나 각 있게 깎아내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거나 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합니다.
또 여래, 석가, 미륵 등과 같은 일반적인 불상의 모습들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이차돈 상이나 여신상(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산신과 같은 급) 등을 제작하기도 한답니다.
우리들은 역사 속의 불상을 보며 고려시대 불상, 조선시대 불상 하며 각 시대의 불교 조각들의 특징을 집어내곤 하지요.
아마도 목아 박물관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몇 백년 후 20세기, 21세기의 미감을 담은 이 시대의 불교 조각으로 이름지어질 강력한 후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무애교' 난간. 천민들에게까지 불교를 전파하고 자 원효가 만들어 널리 퍼뜨린 무애가는 평등과 자유사상을 읊은 노래다. 이 노래의 정신을 담은 다리 무애교. 다리 난간을 지키는 나무 조각들의 표정이 무척 밝다. ⓒ 김 현
박찬수 관장은 단순히 불교가 아니라 '민족종교의 하나'인 불교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즉 민족을 알고 뿌리를 알기 위해 불교를 공부하고, 장승을 깎고, 단군과 '아리랑'과 '이아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외국의 종교, 외국의 문화까지 배우고자 하지요.
ⓒ 김 현
상투머리에 수염을 펄펄 날리는 관장의 모습을 보며 우리 것을 중심에 두고 세상과 포옹하려는 그의 철학이 목아박물관을 통해 실험되고, 우리에게 선보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처가 되고 싶은 나무들... 표정이 무척 천진하다. ⓒ 김 현
앞으로도 목아 박물관의 실험은 계속 될 것이고, 그 실험의 진정한 평가는 좀더 나중에 이루어지겠지요.
전시물들 가운데 제 맘에 가장 끌리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부처가 되고 싶은 나무'들, 목장승들이었습니다.
나무들 틈에 숨어서 그 천진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맑아짐을 느낍니다.
무애교 난간의 귀염둥이들
천민들에게까지 불교를 전파한 원효가 만들어 널리 퍼뜨린 무애가는 평등과 자유사상을 읊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정신을 담은 무애교. 쉽게 말해 자유의 다리라고 할 수 있지요. 마음의 자유, 육체의 자유.... 다리 난간을 지키는 나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요.
찾아가는 길
박물관 안에 찻집(오미자, 솔잎차 등 판매)과 식당(절식 음식, 산채비빔밥, 도토리 수제비가 5000원)이 있으며 여주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6000원 정도가 나옵니다. 버스도 있지요. 이천, 여주, 광주에서 도자기 축제를 하는데 이 시기에 맞춰 가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가까운 곳에 세종대왕릉도 있습니다.
ⓒ 김 현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