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마음을 심층 분석해 번뇌의 인과(因果)를 낱낱이 설명하고 있는 유식사상 특히 '아뢰야식'을 과학적으로 다루고, 이를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에 수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치온(동국대 강사) 박사는 8월 26일 보조사상연구원 월례발표회에서 '아뢰야식의 존재증명에 대한 고찰'을 발표하고, "아뢰야식은 마음의 양상과 변화 과정을 다룬 유식사상의 키워드"라며 "아뢰야식의 실제와 그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불교를 정신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은 불교를 정신치료에 활용하면 적잖은 성과를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 현장에서 명상과 같은 불교적인 방법을 수용해 왔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아뢰야식이란 '현상계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이라는 뜻으로, 유식사상에서는 분별과 판단의 주체로 본다. 따라서 관념적인 정의에 머물러 있는 아뢰야식을, 관련 불교학자들이 실증(實證)할 수만 있다면, 유식사상의 교학 체계는 물론 분석심리학의 이론·방법 등과 비교·연구해 정신치료 분야까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데 김 박사는 주목했다.
이를 위해 김 박사는 "우선 '유식'에 대한 철저한 교학 연구를 토대로 관념에 머물기 쉬운 정신 현상을 명확히 설명하려는 불교학자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고 당부했다. 그래야만 프로이드와 융이 보는 마음의 구조와 유식에서 보는 구조를 비교·연구할 수 있고, 나아가 '여래장과 무의식', '무심(無心)과 무의식' 등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 치료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김 박사는 "불교에서 수행의 방편으로 삼고 있는 수행법으로 다양한 임상 실험을 실시해, 과학적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명숙 씨는 "지금까지 정신을 치료한다는 관점에서 불교사상을 고찰한 연구들이 부족해, 현장에서 불교적 방법론을 찾지 못했다"며 "정신치료를 위해서는 마음의 병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여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하며, 마음을 다루는 유식사상은 이에 대해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국내에서 불교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논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이동식, 강석헌, 한기수, 윤호균, 문홍세, 신옥희, 정창용 등에 힘입어 지금까지 20여 편의 '불교와 정신치료' 주제의 논문이 나왔다. 그러나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에 의해 주도된 탓에 불교를 접목시키는 안목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 성과 역시 개념과 정신의 변화를 비교하는 일차원적인 것에 머물러, 치료 현장에서 활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식사상 특히 '아뢰야식'과 정신치료의 관계를 주제로 한 연구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을 정신상담 및 병리치료를 위한 방향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불교의 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중생구제에 적잖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음 치료'에 대한 불교학자들의 관심 여부에 따라 정신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이 의료 현장에서 불교의 사유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