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교수 출신 화가가 길이 5천m짜리 초대형 작품을 20년에 걸쳐 완성했으나 마땅한 전시장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김기혁(金基赫ㆍ63) 전 고려대 교수는 한국문화유산을 8개 테마로 나눠 제작한 진채화(眞彩畵)를 이달 초 완성할 예정이나 막상 이를 전시할 공간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1980년 교단을 떠난 김씨는 석굴암, 불국사, 종묘, 해인사, 창덕궁, 수원 화성, 경주 남산, 고인돌 등 8부작으로 나눠 10명에 가까운 조수의 협조를 얻어 제작해 왔다.
작품은 이들 문화유산이 안고 있는 설화를 풀어낸 이야기식 그림으로, 각 테마는 다시 10개 가량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예컨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다룬 <경판이안도(經板移安圖)>는 강화도 선원사에서 합천 해인사로 경판을 옮기는 과정을 길이 53m에 담았다.
김씨는 "작품 전체를 이달 말 개항하는 인천국제공항에 전시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성사되기 어려울 것같다"며 "국내 대표적 전시장인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을 모두 사용해도 길이 1천m 규모의 석굴암 연작 하나밖에 걸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궁리 끝에 프랑스 파리 등 외국의 대형 전시장을 물색하고 있다. 국내전의 경우 자신이 원치 않는 방식이긴 하나 작품을 주제별로 나눠 전시하는 방안도 차선책으로 고려중이다.
김씨는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영문학도로,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교단을 버리고 화가로 입문했다. 한국문화의 진수를 대하소설처럼 화폭에 담아 보고 싶었기 때문. 1985년부터 국내외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해 왔다.
2001.3.2 연합뉴스